영화 ‘바바렐라’ 우주선 모티프로
지붕ㆍ난간 가파르게 접힌 묘한 외관
1층엔 부부, 2층엔 장인ㆍ장모 거주
계단 난간 디자인으로 사생활 보호
지붕 달린 쇠사슬 비오면 ‘폭포’로
빗물 모아 텃밭 농사에 재활용
경기도 수원 신갈 나들목 인근, 빽빽한 다세대주택들 사이에 2층짜리 단독주택 하나가 콕 박혀 있다. 종이비행기처럼 접힌 삼각형 지붕에 드레스를 휘날리며 뛰어 내려가야 할 듯한 길고 장엄한 계단. 김동희 건축가(KDDH건축)가 설계한 바바렐라하우스는 30대 후반의 젊은 부부가 장인어른 부부와 함께 사는 집이다. 보란 듯이 ‘다름’을 전시하는 이 집은, 우주선을 만들고 싶어한 건축가와 그 무모함에 박수 쳐준 건축주에 의해 탄생했다.
“그럼 정말 내 마음대로 짓겠습니다”
남편은 광고기획자, 아내는 전직 디자이너다. 결혼해서 아파트에 살던 부부는 계약 만료 즈음 처가와 함께 단독주택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다른 회사에 비해 출퇴근이 자유로운 편이라 아파트의 딱딱 짜인 생활 패턴이 잘 안 맞았어요. 아내도 어릴 때부터 단독주택 생활을 했던 터라 밤에 청소기나 세탁기 못 돌리는 걸 좀 불편해했고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처가의 주택은 20년이 넘어 낡을 대로 낡은 상태였다. 그러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을 떠나 홀로 낯선 곳에 자리잡는 것이 부담스러워 눌러 살던 장인ㆍ장모는 “같이 살자”는 딸의 말에 반색했다. 당시 싱글이던 처남까지, 총 다섯 명이 함께 사는 2층 주택이 계획됐다.
설계를 맡은 김동희 건축가는 부부의 요구사항을 듣고 고민에 잠겼다. 보통 너무 많은 요구가 혼재된 건축주들과 달리 이들은 “두 세대를 층으로 나눠달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남편 분이 외국에 주재원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어서 나중에 세를 들일 수 있도록 두 세대를 완전히 독립시켜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것 말고는 정말 아무 요구도 없었어요. 그냥 특별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세대를 층으로 나누면 아파트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실 건축가가 할 일은 별로 없다.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부부가 김 소장이 과거 설계한 독특한 집들을 보고 그를 찾아왔다는 것, 게다가 둘 다 디자인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이었다.
‘뭔가 보여달라’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김 소장은 주변 다세대주택의 맥락을 고려해 크게 튀지 않는 설계안을 가지고 갔다. 그에 대한 부부의 반응은 노골적인 실망이었다. “이건 나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의 혼잣말이 건축가의 귀에 들어갔고, 그의 ‘예술혼’에 불을 지폈다. “그럼 정말 내 마음대로 해도 되겠습니까?” “네, 정말 마음대로 하시라니까요.”
김 소장이 구상한 것은 ‘우주선’이다. 그가 마음 속에서 최고의 영화로 꼽는 ‘바바렐라’(1968)의 미녀 우주전사와 험상궂은 악당 듀란듀란이 건축주 부부와 꼭 닮았다는 이유다.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우주공상과학에로틱 영화예요. 본 사람이 많지 않아서 설득하긴 어렵지만, 그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이 이 집이랑 똑같아요.”
지붕과 난간이 종이봉투처럼 가파르게 접혀 서로를 향하는 묘한 집. 조심스럽게 내민 디자인에 건축주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왔다. 김 소장이 당황할 정도였다. “저흰 너무 좋았죠. 물론 우리도 그 영화는 못 봤어요. 다만 일반적인 네모 형태의 집이 싫었고, 전체적으로 뾰족하면서도 포근하게 감싸는 듯한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집에 장인ㆍ장모는 처음엔 뜨악해 했지만, 집이 지어지고 주변에서 “예쁘다”는 말이 나오면서 조금씩 표정이 풀렸다. 막 착륙한 우주선처럼 거대한 계단을 늘어뜨린 주택이 다세대 골목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폭포가 떨어지는 집, 안 되는 건 없다!
층간소음에 예민한 장인 부부가 2층에, 자녀 부부는 1층에 살기로 했다. 지금은 결혼해 분가한 처남의 방도 2층에 배치됐다. 개성 있는 외관에 비해 실내는 중앙에 거실이 놓이고 방들이 둘러싼 평이한 구조다. 건축가는 “욕심을 버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르신들 입장에선 사실 아파트 구조가 제일 편해요. 넓고 따뜻하고 베란다 크면 좋은 집이라고 하시죠. 외관도 특이한데 괜히 내부까지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김 소장은 2층 앞뒤로 큰 발코니를 달아 장독대를 놓거나 채소를 손질할 수 있게 했다. 부부 침실과 다용도실 사이에는 장인어른 전용의 ‘바둑 두는 방’을 작게 만들었다. 특이한 것은 다락이다. 박공지붕을 택해 다락 면적을 꽤 넓게 뺄 수 있었는데, 이곳을 나중에 태어날 손주를 위한 공간으로 계획한 것이다. “건축주 부부에게 자녀가 생기면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겠죠. 그리고 아이한테도 숨을 곳이 필요하고요. 아파트의 문제점 중 하나는 아이가 부모의 눈을 피할 곳이 없다는 거예요. 나중에 여기가 아이의 아지트가 될 겁니다.”
다락은 목재 루버를 붙여 마치 공중에 매달린 새집처럼 만들었다. 가운데 네모난 창을 내고 그곳을 통해 아이가 고개를 쏙 내밀면 바로 위의 천창에서 햇볕이 내리쬐는 장면을 상상했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은 사생활을 고려해 세심하게 디자인했다. 양 난간 중 집에 면한 쪽은 콘크리트로 막고 반대 쪽은 철제로 개방해, 나중에 1층에 세입자가 들어왔을 때 계단에서 실내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한 것이다.
1층은 거실 한 면 전체를 서재가 차지하고 있다. 보통은 설계과정에서 서가를 짜 넣지만, 이건 부부가 직접 만든 것이다. 이 무모한 부부는 집 디자인이 마음에 들게 나오자, 그 안에 들어갈 가구도 전부 손수 만들기로 했다. “집을 짓다 보니까 가구에 대한 욕심이 커지더라고요. 아무 가구나 들이기 싫었어요. 마침 예전부터 목공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신랑한테 우리가 직접 만들자고 했죠.”
2년 전 처음 입주할 당시, 집에 있던 건 설계기간 동안 미리 만든 침대가 전부였다. 휑뎅그레한 집을 부부는 부지런히 채워 나갔다. 거실의 서가부터 침실의 화장대, 드레스룸의 선반, 2층의 침대와 붙박이 서재, 서랍장까지 모두 직접 만든 것이다. 디자이너로 일했던 아내가 전공을 한껏 발휘했다. “1층은 밝은 물푸레나무를 쓰고 2층은 짙은 참나무로 차분하게 통일했어요. 부모님 이사오실 때 가구 만들어드릴 테니 다 버리고 오시라고 했거든요. 처음엔 좀 불편해하셨는데 가구 하나씩 만들어 드릴 때마다 마음에 드시는지 점점 불만이 없어지셨어요.” 처음엔 2년 안에 다 만드는 게 목표였지만 마음이 급해지니 스트레스가 커져 여유를 갖기로 했다. 아내는 “10년 장기 프로젝트라 생각하기로 했다”며 웃었다. 부부의 다음 목표는 소파다.
특이하게 가족 구성원 모두 마당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장모님이 유일하게 텃밭 가꾸는 취미가 있을 뿐이다. 외관 디자인에서 건축주의 취향을 확인한 건축가는 다시 한 번 특이한 설계를 제안했다. 지붕 끝에 쇠사슬을 달아 빗물이 타고 흘러내려 1층에서 고이면 이걸 텃밭 농사에 재활용하는 일종의 친환경 시스템이다.
“비가 정말 많이 오면 물줄기가 폭포처럼 떨어질 것”이라는 말에 아내가 기뻐했고, 그걸 본 건축가는 더 기뻐했다. “김 소장님이 예전에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대요.(웃음) 그런데 제가 받으니까 너무 기분이 좋으셨던 거죠. 물론 실제로 폭포처럼 떨어지진 않아요. 이왕 할 거 수로를 더 크게 만들어서 정말 폭포가 되게 할 걸 그랬어요.”
건축주 부부와 건축가, 세 명의 몽상가가 춤추듯이 신나게 만든 바바렐라하우스는 보는 이까지 즐겁게 한다. 판에 박은 듯 똑 같은 서울의 주택가에서 이 우주선 같은 집은 한 덩어리의 유쾌한 질문이다. “왜 안돼?”
황수현 기자
건축개요
대지위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대지면적: 263.6㎡
건축면적: 109.87㎡
연면적: 192.59㎡
건폐율: 41.68%
용적률: 73.06%
규모: 지상 2층
구조: 기초 – 철근콘크리트구조/ 일반구조- 경골목구조
용도: 다가구주택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