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내 삽입해 생리혈 받는 컵
저렴하고 편해 패드 대안 급부상
의약외품 해당돼 판매 단속
소비자들 해외 사이트서만 구매
“한국은 대안 생리대 정보 부족
정부 가이드라인 마련 서둘러야”
“9개월 동안 수소문해 겨우 구했어요.”
직장인 윤모(25)씨는 10년 넘게 사용한 일회용 생리대에 불만이 많았다. 생리대에 화학물질이 함유된 탓에 피부 발진이 자주 일어났고 생리통도 심했다. 그러다 윤씨는 올해 초 인터넷에서 대안 생리대인 ‘생리컵’ 사용후기를 읽은 후 구매를 결심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판매처가 없어 지난달에서야 해외사이트를 통해 가까스로 구할 수 있었다. 윤씨는 19일 “생리컵을 이용하면서 일회용 생리대의 인위적인 느낌이나 냄새 등이 사라졌다”며 “생리대 대체재가 있다는 사실을 진작 알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비싸고 이용이 불편한 생리대의 대안으로 생리컵이 급부상 중이다. 그러나 정부는 생리컵의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매를 불허해 맘 편히 생리할 권리를 바라는 여성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생리컵은 인체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 버릴 수 있도록 제작된 실리콘 재질의 체내형 여성용품. 국내 생리용품 시장은 패드형 생리대(90%)와 체내형인 탐폰(10%)이 장악했지만, 최근 소비자들이 활동 제약이 큰 패드 형태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대안 생리대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늘었다. 특히 얼마 전 가격 인상으로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속옷에 덧대 쓴다’는 저소득층 청소년의 사연이 논란이 되자 비용은 2만~3만원대로 저렴하고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생리컵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한창 입소문을 타던 생리컵은 지난 7월 돌연 판매가 금지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생리컵이 약사법상 의약외품(질병 치료ㆍ예방용 의약품보다 인체 작용이 경미한 약품)에 해당한다며 판매 단속에 나섰다. 당시 국내에는 의약외품 허가를 받은 생리컵이 없어 유통은 전면 중단됐고 소비자들은 해외로 눈길을 돌렸다. 직장인 이모(26)씨는 “싱가포르 출장 길에 여러 판매 사이트와 정보를 비교한 뒤 생리컵을 구입했다”며 “1930년대 만들어진 생리컵이 왜 한국에서만 홀대를 받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갑작스런 판매중단 조치로 생리컵 개발에 뛰어든 영세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실리콘 제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오모(38)씨는 지난해말 고객들 요청으로 생리컵 생산을 시작했지만 곧 사업을 접어야 했다. 오씨는 “생리컵 생산사업에 처음 뛰어 들어 3월 의약외품허가심사신고서를 제출했는데 식약처에서는 의약외품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뒤 신고를 철회하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수요가 늘자 당국이 뒤늦게 생리컵을 의약외품에 포함시키고 관리에 들어갔다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문제는 또 있다. 생리컵이 뒤늦게 의약외품으로 인정만 받았을 뿐 제작업체 생산을 위한 허가 기준도 전무하다. 혈량, 생리주기 등을 자동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생리컵을 개발한 황룡(32)씨는 “허가 기준이 명확한 의료기기도 심사를 통과하기 힘든데 생리컵은 기준 자체가 없어 아예 생산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지난 8월 게시된 ‘의약외품 기준 및 시험방법 작성 시 시험항목 설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에는 여전히 생리컵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약사법에 생리컵이라는 용어는 없으나 생리대를 포함한 여성용품 모두를 의약외품으로 봐야 한다”면서도 구체적인 허가 절차나 안전 기준 문의에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여성들에게 생리는 인권에 해당하는 만큼 정부가 생리컵 허가 기준을 세분화해 선택권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관계자는 “생리컵 역시 개인에 따라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점을 감안해 실리콘 재질의 안전성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생리와 관련한 논의를 금기시해 대안 생리대 정보도 적을 수밖에 없다”며 “여성들이 몸에 맞는 용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서둘러 생리컵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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