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까지 145만8,023명이 관람한 미국 뮤지컬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슬쩍 놀라면서도 부러웠다. 크레딧에 배급사로 이름을 올린 미국 영화사 라이온스게이트 때문이었다. 라이온스게이트는 덩치가 제법 있으나 메이저 스튜디오에는 끼지 못 한다. 인디라는 수식이 종종 따르기도 하나 군소 영화사로 취급하기에는 규모가 커 ‘미니 메이저’로 불리기도 한다. 메이저 아닌 메이저, 인디 아닌 인디인 셈이다.
라이온스게이트의 대표작은 ‘헝거 게임’과 ‘다이버전트’ ‘쏘우’ 시리즈다. 인지도는 높으나 대작이라는 수식이 어색하다. 수작이라 칭하기도 망설여진다. 미니 메이저라 불리는, 어정쩡한 회사다운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상업적이면서도 명작의 대열에 오를 만한 ‘라라랜드’를 보고선 라이온스게이트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었다. 미국 영화의 저력에 대해 ‘역시’라는 감탄을 새삼스레 했다. 대형 영화사가 아니어도 나름 생존 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니 ‘라라랜드’ 같은 저예산 수작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제작비가 3,000만달러(약 358억원)인 ‘라라랜드’는 할리우드에선 중저가 영화에 해당한다.
‘라라랜드’에 대한 단상은 국내 극장가를 돌아보게 했다. 올해 개봉해 시장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한 한국영화 ‘스플릿’과 ‘대결’, ‘미씽: 사라진 여자’(‘미씽’)가 연달아 떠올랐다.
세 영화는 흠을 찾기 힘든, 상업영화의 세공술을 보여준다. 복수극의 전형을 밟으면서도 장르적 쾌감을 선사(‘스플릿’과 ‘대결’)하거나 스릴러 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관객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미씽’). 재미와 함께 사회적 메시지까지 조리 있게 전한다. 상업영화의 미덕을 고루 갖췄으니 대박까진 아니어도 흥행작이라는 수식을 얻을 만하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스플릿’은 75만8,197명, ‘대결’은 3만2,278명이 봤다. ‘미씽’은 그나마 115만1,922명을 모아 제법 흥행한 것으로 보이나 손익분기점을 아직 넘지 못 했다.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가 시장에서 냉대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몇 영화인들은 세 영화의 ‘출신 성분’을 꼽는다. 이른바 충무로 ‘빅4’(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NEW)에 끼지 못하는 투자배급사들이 영화 제작과 상영 전반을 관장하다 보니 세 싸움에서 밀렸다는 분석이다. 투자배급사의 덩치가 작아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고, 마케팅에서도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플릿’은 오퍼스픽쳐스, ‘대결’은 스톰픽쳐스코리아, ‘미씽’은 메가박스플러스엠이 각각 투자배급했다. ‘스플릿’의 한 관계자는 “대형 투자배급사 영화가 ‘스플릿’ 개봉 예정일에 갑자기 개봉하면서 마케팅 전략이 모두 흐트러졌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영화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빅4’의 소수 흥행 영화들이 수익 대부분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현상이 당연시 되어가는 한국에서도 과연 ‘라라랜드’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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