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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모친 모정 저버린 美의대교수에 ‘망은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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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모친 모정 저버린 美의대교수에 ‘망은죄’

입력
2016.1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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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별 이후 암투병 중에도

“유학공부에 매진 귀국 말라”

자신명의의 토지 등 증여 약속

세 딸 도움에 우울증-치매 견뎌

“재산 나눠 가져라” 유언장 쓰자

아들, 약속 이행하라 소송 제기

임대료 독차지 욕심 문서 위조

“성공 뒤에도 부양-간병 안 해”

2심 “증여의무 이행 필요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너희가 귀국한다면야 얼마나 힘이 되고 의지가 되겠냐마는 각자가 잘 되는 것이 서로 힘이 되는 것이니 구해(구애) 받지 말고 너희 앞날을 생각하여 일해라. 손주들 매일 보는 것이 더 없는 즐거움이겠지만 이제 내가 늘거(늙어) 아무 도움을 줄 쑤(수)가 없을 것이다.”

지난 1990년 대장암에 걸려 ‘6개월 남았다’는 판정을 받은 A(92)씨는 미국 유학을 떠나 의사로 자리잡기 위해 분투하던 아들(62)에게 어렵게 편지를 띄웠다. “곁에 있어 달라”는 말은 끝내 담지 못했다. 대신 공부에 매진하는 아들에게 자기 명의의 아파트와 토지를 주겠노라 약속했다. “내가 죽기 전엔 내가 관리할 것.”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엄마가 재산을 넘기면서 내건 유일한 조건이었다.

바람대로 아들은 성공했다. 몇 년 뒤 미국 명문대 의과대학 조교수로 임명됐다. 월 보수가 2만5,000달러(한화 2,980여만원)에 달하고, 의사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시기 A씨도 한국에서 대장암을 이겨냈다. 그러나 아들의 마음에는 고마움이 없는 듯했다. 1년에 고작 한 두 번, 학회에 참석하거나 집안일을 처리하러 들어왔다가 급히 미국으로 돌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엄마는 묵묵히 바라만 봤다.

A씨는 40여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낸 뒤 줄곧 홀로 4남매를 키웠다. 대장암을 극복한 뒤 찾아온 우울증과도 싸웠다. 유독 기대가 컸던 외아들의 빈 자리는 남은 딸들이 지켰다. 2004년 치매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받을 때도 변함 없이 곁에 있어주던 딸들을 보며 엄마는 자필 유언장을 썼다. “소유한 모든 토지를 5등분해 4남매와 산소를 돌보는 사람에게 주고 아파트는 딸들에게 준다”

미국에서 이 소식을 들은 아들은 90년대 초 A씨가 작성한 증여증서를 근거로 “토지를 주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하라”고 아흔 된 노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노모 측 대리인은 “20여년 전 이미 증여한 아파트를 돌려달라”고 반소(反訴)를 냈다. 지난해 1심 법원은 증여계약 효력을 인정해 아들 손을 들어줬다.

‘성공한 불효자’의 발목을 잡은 건 2심 재판부였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2부(부장 박형남)는 21일 “미국에서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얻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생활을 했지만 피고(어머니)를 부양하거나 피고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망은(忘恩ㆍ은혜를 저버리는)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해 증여계약이 해지된 것으로 본다”고 땅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판단에는 아들이 어머니를 상대로 저지른 범행이 결정적이었다. 치매 증세가 깊어지자 아들은 A씨 생전에는 아파트 임대료를 나눠 가지기로 했던 동업계약서를 A씨 동의 없이 해지했다. 곧이어 임차인과 새로 작성한 임대차계약서에 자신의 명의만 적어 넣었다. 그간 A씨가 생활비로 쓰던 임대료였다. 아들은 사문서위조및위조사문서행사죄로 지난해 7월 유죄가 인정돼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재판부는 증여계약에 요구되는 윤리적 요청을 폭넓게 인정했다. “증여자에 대한 증여 받는 자의 범죄행위가 있을 때 증여자는 그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는 민법을 근거로 망은행위를 한 사람에게까지 증여계약상 의무를 이행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이미 넘겨준 아파트에 대해서까지 해제 효과를 인정해 원상회복을 명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아들은 국내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저명인이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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