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을 따지 못해 죄송합니다.”
지난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태극전사들은 여기저기서 고개를 숙였다. 4년간 흘린 땀방울을 메달로 결실을 이루지 못해 본인이 가장 속상할 테지만 응원해준 국민들을 먼저 찾고 사과했다. 국가주의를 뿌리로 성장한 한국 스포츠의 ‘민낯’이 드러난 장면이다.
스포츠, 그 자체를 보고 즐길 수는 없는 것 일까. 물론 시대가 바뀌어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회가 됐지만 스포츠에는 여전히 국가주의가 남아있다. 대회에서 우승하면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국가대항전 A매치 때는 경기 전 국민의례를 진행하며 ‘국뽕’ 심리를 자극한다. 또 ‘국민’이라는 호칭이 흔히 붙는다. 피겨 여왕 김연아(은퇴)는 현역 시절 ‘국민 여동생’으로 통했고, 홈런 타자 이승엽(삼성)은 ‘국민 타자’로 불린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들은 모두 ‘국민 영웅’ 대접을 받았다. 반면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을 내는 선수들은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또 프로스포츠에서 반드시 국민의례를 진행할 필요가 있는지도 얘기가 나온다. 경기장에 갔으면 경기만 보면 되는데 식전 행사 때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1980년대 후반 영화 관람을 온 관객이 모두 일어서서 애국가를 듣고 ‘대한뉴스’를 봤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관에서는 1989년에서야 이 제도가 폐지됐는데 프로스포츠를 보려면 아직도 ‘의식’을 치러야 한다.
프로농구는 한국농구연맹(KBL) 규정에 따라 경기 전 선수와 코칭스태프, 심판진 모두 국민의례를 하도록 돼 있다. 프로야구는 강제 규정은 없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규정 경기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 안에 ‘경기 개시 직전 애국가가 방송될 때 벤치 내에 있는 선수는 벤치 앞에 나와 정렬하며 기타 경기장 내에 있는 심판위원과 선수는 모자를 벗고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 연주가 종료될 때까지 개인 돌출행동 금지’라고 명시됐다. 물론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나 미국프로농구(NBA)도 마찬가지로 경기 전 국민의례를 하는 것이 관행이지만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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