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 친구들이 모이는 크리스마스와 연말도 명절로 친다면 단연 스테이크가 그 명절 음식 대표다. 그 중에서도 소고기 스테이크다. 갓 구운 빵처럼 향긋한 스테이크 향이 집 안에 꽉 차면 거기서부터 이미 파티 분위기가 확 산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이상하다. 큰 맘 먹고 사온 스테이크가 막상 구워 놓으면 맛이 없다. 핏물이 질질 새고 퍽퍽해 입맛을 버리고야 만다.
왜 집에서 구운 스테이크는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처럼 맛이 나지 않을까. 미안하지만 못 구워서 그렇다. 로스용 얇은 고기를 굽는 익숙한 습관대로 구워서는 안 된다. 두터운 스테이크용 고기는 굽는 법이 따로 있다. 오랫동안 잘못 알려진 속설도 많아 헷갈리기도 십상이다. 이 10계명만 제대로 지키면 스테이크, 레스토랑처럼 부드럽고 촉촉하게 구울 수 있다.
1계명: 산지, 부위를 따져 골라라
고기는 근육이다. 모든 살코기는 그 자체가 근육이며 부위별로 운동 빈도와 강도가 달라 물성이 다를 뿐이다. 마블링은 근육 사이에 촘촘히 분포한 지방 켜다. 소고기 기름은 그 자체로 고소하다.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마블링 좋은 고기는 막상 먹자면 한두 입은 좋지만, 끝까지 맛있게 먹기엔 너무 느끼하다. ‘마블링 신화’를 이제 마칠 때가 됐다. 미국과 일본의 영향으로 이제까지 이 땅의 한우는 오로지 마블링만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좁은 축사에 갇혀 곡물 사료를 먹으면 마블링은 잘 형성될지 몰라도 살코기가 지닌 자체의 맛은 가려진다. 소가 원래 하는 대로 어정버정 걸어 다니며 풀을 뜯어 먹고 자란 쪽이 낫다. 끝까지 물리지 않고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고기다. 마블링을 기준으로 하는 현행 소고기 등급제에서 가려지지 않는 맛의 등급이 있다. 한국에도 이런 소를 생산하는 농가가 찾아보면 많다.
스테이크 얘기로 돌아가자면, 한우는 그래서 때로 맛있는 고기가 낮은 등급에 묻혀 잊히기도 한다. 호주산은 소들이 알아서 풀을 뜯어 먹으며 자라 마블링이 덜한 대신 고기 자체의 맛이 난다. 미국산은 프라임, 초이스 등 다양한 등급으로 나뉘는데 일본 영향을 더 크게 받은 한국의 소고기보다는 덜 극단적인 기름 맛을 나타낸다. 100g당 1만원을 쉽게 훌쩍 넘기는 한우가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그 몇 분의 일 가격인 수입 소고기가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스테이크 부위를 고른다면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채끝 등심이다. 등심 뒤쪽으로 자리 잡은 이 부위는 육질이 연하고 마블링이 보인다. 등심과 안심은 영원한 스테이크의 고전이다. 등심은 풍미가 좋고 마블링도 꾹꾹 잘 들어찬다. 안심도 풍미는 좋고 연하지만 지방은 훨씬 적다. 가장 박력 있는 비주얼로 스테이크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T본’이라 부르는 부위다. 사실 이 부위는 안심과 등심 사이 T자 모양의 뼈를 함께 자른 것이 정체다. 정확히는 부위명이 아니라 정형 방식에 따른 이름이다.
2계명: 숙성할수록 맛이 좋아진다
‘갓 잡은 신선한 고기’는 무엇이든 맛이 없다. 과학시간에 배웠듯, 동물이 죽으면 ‘사후경직’이 일어난다. 닭은 몇 시간, 돼지는 반나절 정도 지속되는데 소는 하루 종일 간다. 갓 잡은 고기는 확률상 사후경직이 끝나지 않은 뻣뻣한 것이기 쉽다. 이 시간을 지낸 고기는 산소를 만나 스스로를 소화시킨다. 자가소화의 느린 화학반응들은 우리가 소고기에 기대하는 맛을 생성시킨다. 근육 조직도 약화된다. 흔히 썩기 직전의 고기가 가장 맛있다고 하는데, 이 말은 사실이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썩기 직전까지는 숙성이요, 썩고 나면 변질이라고 말한다.
소고기는 냉장 보관시 최장 한 달까지도 숙성이 가능하며,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는 냉장고 구석에 두고 한참 잊었다 꺼내 굽는 것이다. 냉동육일 경우에도 먹기 며칠 전부터 냉장고에 내려둘 필요가 있다. 의도했거나 말았거나 냉장고 안에서 밀폐 보관, 아니 숙성하는 것은 습식숙성이다. 밀폐하지 않고 서늘한 곳에서 고기를 숙성시키는 건식숙성은 수분이 빠져나가고 고기가 쪼그라들며, 겉이 어쩔 수 없이 변질되지만 속엔 맛이 응축된다. 몇 해전부터 흔해진 ‘드라이 에이징’이 바로 이것인데, 굳이 가정에서 따라해 보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한정된 예산으로 살 수 있는 스테이크용 고기의 등급이 성에 차지 않을 때는 감칠맛을 더해주는 치트키를 사용해보자. 국간장, 액젓, 피시소스, 굴소스 등 단백질을 베이스로 한 장류를 고기 표면에 아주 가볍게 발라 며칠 냉장고에 재워 두면 고기 맛이 향상된 것처럼 느껴진다.
3계명: 소금이 중요하다
팬, 기름, 고기, 소금. 스테이크를 맛있게 구울 수 있는 최소 단위, 스테이크의 4요소다. 오븐이 없어도, 버터를 사용하지 않고 후추나 소스, 허브를 더하지 않아도 스테이크는 된다. 아직 스테이크를 구우려면 멀었다. 소금을 언제 사용하는가를 두고는 여전히 말이 많다. 고기의 75%를 이루는 수분이 관건이라서다. 굽기 전에 소금간을 할 때는 어느 시점까지는 소금의 삼투압 현상으로 수분이 겉으로 빠져 나온다. 그러나 30~40분이 지나면 그 수분이 다시 고기 안으로 흡수돼 들어간다. 농도를 맞춘 소금물에 담가두거나(Brine, 브린) 허브, 소금, 오일 등 양념을 묻혀 두는(Marinade, 마리네이드) 방법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여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과감히 날고기를 그대로 굽는 게 차라리 낫다. 대개의 식당에서도 사실 소금간을 구우면서, 혹은 굽기 직전에 한다. 소금은 두께가 두꺼운 만큼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충분히 뿌리는 것이 좋다. 일반 소금에 비해 덜 짠 코셔 솔트(Kosher salt)를 쓴다면 눈 덮인 벌판처럼 새하얗게 뿌리는 정도다.
4계명: 굽기 전부터 온도가 중요하다
스테이크를 굽는다는 것은 1차적으로 고기를 익힌다는 의미다. 얇아도 2㎝, 보통은 3㎝부터 시작하는 스테이크용 고기의 속까지 열이 잘 도달해야 한다. 열이 고르게 잘 도달하려면 우선 두께가 일정해야 한다. 균질하게 익히기 위해서다. 고기를 실로 묶어 굽는 것은 일정한 모양을 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고른 조리를 위해서라는 의미가 더 크다.
열이 속까지 잘 도달하기 위해서는 구울 때 고기가 어느 온도를 갖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리과학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이 갈린다. 실온에 고기 온도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차가운 온도 그대로, 심지어 냉동 상태에서 굽기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내부가 익는 속도를 훨씬 늦출 수 있다는 이유다. 상대적으로 얇은 고기로 레어나 미디엄 레어를 굽는다면 후자의 의견이, 두꺼운 고기로 웰던을 구우려면 전자의 의견이 유리하다.
5계명: 불과 연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오븐에 스테이크를 굽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스테이크 하우스’ 이수현 헤드셰프는 “수분 손실이 많은 가정용 오븐보다는 팬이 낫다”고 말한다. 스테이크 하우스의 전신인 ‘파리스 그릴’ 시절부터 20여 년간 그릴을 담당한 이 헤드셰프는 “팬은 두꺼울수록 좋다. 열을 오래 갖고 있어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기름은 많을수록 좋다. 고기의 3분의 1 정도는 잠길 정도로 기름을 콸콸 두른다. 가장 강한 불을 사용해 팬을 달구는데, 어중간한 온도가 아니라 팬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온도까지 도달해야 한다. 팬은 타지 않으니 불과 연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뜨거운 기름에 고기를 얹으면 당연히 기름이 튄다. 키친타월로 표면의 수분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이 좋다.
6계명: 타기 직전까지 자주 뒤집어라
날고기는 고기 맛으로 먹지만, 구운 고기는 향과 맛으로 먹는다. 향은 겉에서 낸다. 스테이크는 ‘굽는다’고 하지만 이 단계에서 실제로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은 ‘튀긴다’ 혹은 ‘지진다’는 말이다. 여전히 강한 불로 위, 아래, 앞, 뒤, 옆까지 육면체를 주사위처럼 돌려가며 고깃덩어리 겉을 모두 튀긴다. 이 때 고기 겉면의 수분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다. 팬에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칙’ 하는 소리는 수분이 빠져나가는 소리다. 건조하고 뻣뻣하게 근육만 남은 고기 겉면에서 120℃에서 시작되는 마이야르(Mailard) 반응이 일어난다. 빵, 고기, 초콜릿, 커피, 흑맥주가 가진 일관된 ‘맛있는 맛’의 정체다. 스테이크의 겉면 전체에서 잘 볶은 커피콩과 다크 초콜릿 사이의 색이 나야 한다. 타기 직전까지 마이야르의 혜택을 이끌어낸다. 겉을 가열하면 겉의 육즙은 증발하고 내부의 육즙은 속으로 몰린 것처럼 보인다. 이 현상이 와전되어 1850년 유스투스 폰 리비히라는 독일의 과학자가 ‘겉을 재빨리 구우면 육즙을 가둘 수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이 자의 말을 믿는 이가 많은데 절대 현혹되지 말지어다.
7계명: 속까지 열을 전달한다
한편 안쪽에서는 고기, 근육을 가열하면 55~60℃에서부터 근섬유가 쪼그라들면서 수분이 빠져 나오고 단단해진다. 60~65℃가 적당히 부드럽게 씹히면서 촉촉한 구역이다. 겉에서 마이야르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온도인 120℃와 상충된다. 그래서 스테이크는 두꺼울수록 좋다고 하는 것이다. 겉을 높은 온도로 실컷 지지는 동안 속은 낮은 온도에서 맛을 끌어낸다. 이 수분은 빨갛긴 해도 피가 아니라 육즙이다. 촉촉하게 느껴지는 포인트도, 맛에 관여하는 것도 모두 이 수분인데, 문제는 고기가 두꺼우면 속까지 열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겉을 완성한 후에는 불을 낮추고 속까지 열을 넣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기를 한 번만 뒤집어야 한다는 것은 한국식 숯불구이집에서 1㎝ 이하의 얇은 고기를 구울 때만 맞는 말이다. 고기는 자주 뒤집을수록 좋다. 자주 뒤집는다고 해서 육즙이 다 빠져버릴 두께가 아니니 절대 걱정 말자. 또, 스테이크에 많은 양의 기름을 사용한 이유는 열을 잘 전달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숟가락으로 뜨거운 기름을 떠서 스테이크 윗면에 부지런히 끼얹으면 온도가 더 잘 전달된다. 베이스팅(Basting)이라고 하는 조리 테크닉인데 보기에도 꽤 그럴싸해 보인다. 잘 익혀두면 어느 파티에서나 ‘오늘은 내가 요리사’ 할 수 있다.
8계명: 고기는 찔러보면 안다
고기를 얼마나 익힐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다. 겉만 얇게 익어 얇은 회색 띠를 두른 블루레어부터 회색 부분이 좀더 넓지만 표면 가까이까지 붉은 기운이 고루 퍼져 있는 레어, 미디엄 레어, 속은 분홍에 가까워져 있고 가장 안쪽에만 붉은 기운이 몰려 있는 미디엄, 미디엄 웰던, 골고루 회색에 가까운 빛으로 변한 웰던까지 모든 취향을 존중한다. 단, 촉촉하게 입맛 당기는 육즙을 듬뿍 머금고 구운 고기의 향까지 충분히 나는 것은 미디엄 레어라는 점만 분명히 해둔다.
원하는 온도로 굽기 위해서는 온도계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뾰족한 끝 부분을 푹 찔러 내부 온도를 잴 수 있는 조리용 온도계가 1만원도 하지 않으니 하나 장만해 두자. 나라마다 다른데 보통 레어는 심부 온도가 45~55℃ 사이이고 웰던으로 갈수록 온도가 높아진다. 온도계가 번거롭다면 손톱 끝으로 눌러보는 방법도 있다. 레어는 볼을 눌렀을 때, 미디엄은 턱 끝의 도톰한 살을, 웰던은 이마의 가장 튀어나온 곳을 눌렀을 때 정도의 탄력을 갖고 있다.
9계명: 스테이크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밥이 다 됐어도 뜸들일 시간이 또 필요한 것처럼 원하는 정도로 스테이크를 구운 후에도 ‘레스팅(Resting)’ 시간이 필요하다. 팬에서 내린 고기를 따뜻한 온도를 가진 접시나 도마 위에 10~12분 정도 그대로 두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는 한 가지 의미는 여열에 고기가 마저 익도록 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두 번째 의미는 가열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속에 몰린 수분이 고기 덩어리에 고루 퍼져 재분배되도록 하는 것이다. 충분히 레스팅을 거치지 않고 섣불리 고기를 자르면 그때야말로 육즙이 줄줄 흘러 다 도망가고 뻣뻣한 근육 덩어리만 남는다.
10계명: 스테이크에 필요한 것은?
간이 잘 된 스테이크는 그대로 먹어도 충분하지만 더 맛있게 먹는 방법도 있다. 굽기 전, 혹은 구우면서가 아니라 구운 후에 거칠게 후추를 갈아 뿌리면 보기 좋은 장식이 될 뿐 아니라 후추 향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부족한 간을 채우기 위해 소금을 곁들이는 것도 좋은데 게랑드 소금이나 거칠게 부순 암염(巖鹽)처럼 선명한 존재감을 지닌 입자 거친 소금이 좋다. 짜고, 신 맛을 동시에 지닌 홀그레인머스터드도 대표적으로 스테이크와 잘 어울린다. 팬에 남은 기름이나 버터에 레드와인과 레스팅하며 나오는 약간의 육즙을 부어 졸이면 고기의 맛 마지막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고 그럴싸한 소스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취재협조 그랜드 하얏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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