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우주 영화로 화제가 됐던 영화 ‘인터스텔라’. 대개의 관객들은 기발한 상상력, 압도적 스케일에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다 주인공 쿠퍼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에이 뭐야’ ‘만화네’하는 반응을 보인다. 모든 걸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에서 가능한 얘기냐는 거다. 그런데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그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했다. “중력파 연구를 이끌었고,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자문을 맡았던 킵 손 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가 저 장면에서 중력파 연구의 미래를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어서다.
“18세기 전자기파가 발견된 뒤 인류는 전자기파 활용법을 연구했고, 그 덕에 지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가 가능해졌어요. 이제 중력파가 검출됐으니, 인류가 연구를 거듭한 뒤 중력파 활용법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18세기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렇다면 SF소설에서나 나오던 타임머신, 워프 항법 같은 게 실제로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그 상상이 영화 후반부에 살짝 녹아있는 거죠.”
오 연구원의 책 ‘중력파…’에는 과학 분야의 우리 책으로는 드물게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달려 있다. 지난 2월 11일 중력파 검출 성공 소식이 발표된 뒤 불과 보름 만에 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 등에서는 이제야 관련 서적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중력파 검출에 대한 세계 최초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이미 원고를 다 완성한 상태에서 검출 얘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5장 ‘아인슈타인의 선물’만 새로 써넣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의 일원으로서 비밀유지 엄수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출간일자를 이미 정해둔 출판사에도 새로 쓰는 5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내용 보강 필요성이 있다”고만 얘기했을 정도였다.
이제 널리 알려진 대로 중력파의 존재 자체는 이미 아인슈타인이 예견했다. 그러나 워낙 미세한 크기라 아인슈타인도, 그 이후 연구진들도 검출 불가를 예상했다. 중력파 검출에 성공한 라이고(LIGO)과학협력단 역시 출범 초기엔 의심도 많이 받았다. 천체물리학 토대가 빈약한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중력파는 널리 알려진 개념이 아니었다.
책을 쓰기로 한 건 라이고과학협력단에 가입한 뒤 읽게 된 영국 학자 해리 콜린스의 책 ‘중력의 그림자’였다. 라이고과학협력단의 활동을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것인데, 중력파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나도 저런 책을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집필의도는 ‘교양’이었는데 과학의 벽이 여전하다보니 사실상 ‘학술’이 됐다. 오 연구원이 ‘진짜 대중서’ 하나 써보고 싶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희망도 있다. 중력파 검출 이후 우리나라도 자체 프로젝트를 하는 등 관심이 높아졌다. 석유ㆍ광물 탐사에 쓰이는 중력경자계 원리를 응용한 한국형 중력파 탐지기 소그로(SOGRO) 연구다. “중력파도 검출되고, 우리 중력파 탐지기 연구도 시작하고, 이런 책도 내고 상도 받고…. 제 평생의 운이 올해 다 터지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해요.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들어 우주를 바라보길 기원합니다.”
대전=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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