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길 수 없는 작가였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을 번역한 송태욱씨가 소세키에 대해 내린 최종 평가다. 총 14권으로 이뤄진 전집은 2016년 작가 사후 10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2013년 9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시작으로 2016년 6월 ‘명암’까지 작가의 모든 장편소설이 번역 출간됐다. 2011년 별세한 번역가 노재명씨가 ‘태풍’(4권)과 ‘그 후’(8권)를 작업했고, 나머지 12권을 송씨가 이어서 번역했다.
“처음 번역 작업이 들어왔을 때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20세기 일본 문학의 대문호이자 국민작가이기도 하니까요.” 전문 번역가로 20년 가까이 일한 송씨는 원래 문학 전공자다. 대학원에서 김승옥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지가 않아서”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엔 인문학 서적 위주로 작업했던 그에게 소세키라는 대작가의 전집을 번역하는 일은 반가움이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원래 ‘국민작가’니 ‘노벨상 수상 작가’니 해도 막상 번역에 들어가서 작가와 대면해 보면 별 거 아니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현대 문학 작가 중 그런 경우가 많죠. 이럴 때는 역자가 작품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소세키는 반대였어요. 지식과 교양의 크기와 깊이에 압도됐다고 할까요. 저는 번역이 작가와 역자 사이의 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거기서 진 거죠.”
그에 따르면 소세키의 소설은 “감히 내가” 넣을 수도 뺄 수도 없는 작품이었다. 번역 작업은 최대한 원문을 살리는 데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쓰인 지 100년이 넘은 작품이라 현대 일본어와 이미 크게 차이가 나는 데다가 작가가 직접 만든 조어의 양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현대 작가의 언어와 비교하면 한 열 배 정도 차이가 날 겁니다. 어려운 건 아는 단어인데도 그때와 지금의 의미가 달라져서 틀린 번역이 되는 거죠. 기존에 나온 번역본들 중에도 이런 이유로 오류를 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일례로 원문의 ‘청소부’란 단어를 그대로 옮겼는데, 읽다 보니 문맥에 맞지 않아 사전을 뒤져 ‘똥 푸는 사람’이라는 두 번째 뜻을 찾아내 바꾼 경우다. 이건 오히려 “쉬운 축에 속하는” 예다. “‘우미인초’(5권)를 번역할 땐 한 단락 해놓고 30분 넘게 고민한 적도 있어요. 단어도 문법도 다 아는 것들인데 해놓고 나면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거죠. 한학에 기본해서 인물을 묘사한 부분이었는데 나중에야 그걸 알고 좀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따라가면서 번역한 결과 그가 내린 결론은 “소세키는 번역가를 위한 작가”라는 것이다. “스토리가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도 번역할 땐 재미가 없어요. 60분짜리 드라마를 하루에 2분씩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번역이 그런 일입니다. 그런데 소세키는 스토리는 별 게 없는데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절묘해요. 곰곰이 생각하고 들여다볼수록 흥미로웠습니다.”
전집이 나온 3년여간 송씨가 번역한 작품은 놀랍게도 40권에 이른다. 12권 빼고도 28권을 더 작업한 것이다. “소세키 번역은 현대 작가에 비해 시간이 두 세배 더 걸립니다. 그런데 원고료는 같아요. 이것만 잡고 있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죠.” 그는 1년에 한 권씩 번역한다는 유럽의 일부 번역가들을 두고 “꿈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정확한 번역은 중요하지만, 번역가의 처우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좋은 번역을 접할 자격이 있는 사회인지 묻고 싶어집니다. 좋은 책의 가치를 먼저 알아야 좋은 책을 가질 자격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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