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의 사진술이 최초로 프랑스 학술원의 공인을 받은 것은 1839년의 일이었다. 당시의 사진은 은도금한 구리판이나 은염을 도포한 종이에 얹혀진 연약한 이미지에 불과했다. 다루기 까다로웠으며 제작비도 만만치 않았다.
사진이 지니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이 그것을 과도하게 좋아하고 집착한다는 점인 듯하다. 사진사가 베르나르 마르보는 당시 사진술이 불러온 흥분을 130년 후 달착륙 때와 비교했다. 나는 다게레오타입 사진관 앞에 까맣게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판화 한 점을 잊지 못한다. 당시 사람들은 사진을 열렬하게 가지고 싶어했다. 흥미롭게도 자신과 가족의 사진뿐 아니라 유명인의 사진들도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예를 들어 1860년에 빅토리아 여왕의 사진이 수십만 장 복제되어 팔려나갔고, 부군이었던 알버트 공이 죽자 사람들은 7만장에 가까운 그의 생전 사진을 사들였다. 죽은 알버트 공의 사진을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사서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완전히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탄생부터 지금까지, 사진은 가장 열정적 매체
그러나 당시 프랑스나 영국의 ‘원시 사진가’들도 사진에 파묻혀 살아가는 지금의 인류를 본다면 아마 경악할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맹렬하게 사진을 만들어낸다. 2014년 9월 현재, 페이스북 한 곳에만도 매일 3억5,000만장의 사진이 올라온다고 한다. 1초에 4,000장의 사진이 새롭게 등장하는 셈이다. 트위터와 스냅챗, 플리커, 인스타그램, 텀블러, 그리고 네트워크에 올려지지 않고 사라지는 수많은 사진들의 숫자는 추정하기조차 어렵다. 우리가 사는 곳은 뜨겁고 붐비는 사진의 세계다. 우리가 그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사진을 가지게 된 이후 그 뜨거움이 한번도 식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람들은 기뻐도, 슬퍼도, 즐거워도, 우울해도 사진을 찍는다. 스마트폰을 가지게 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우리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진에 빠져들었다. 우리 주변이 사진들로 가득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거리의 광고판에서, 책과 잡지에서, 웹사이트에서, SNS에서, 매일매일 수많은 사진이 우리를 둘러싼다. 사진은 때로 젖은 교태를 부리며 우리를 유혹하고, 가끔은 조각 같은 눈썹을 찡그리며 우리를 바라본다. 나이든 남자의 얼굴을 한 채로 깊은 고뇌의 표정을 짓고, 반짝이는 눈망울을 지닌 여자아이가 되어 장난을 걸어온다.
만약 사진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이 사진을 이상할 정도로 좋아한다는 것이 사진 발명의 필연성을 증거하지는 않는다. 모든 발명은 사회적인 필요와 산업적 기반 뿐 아니라 어떤 역사적 우연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절실하게 원하던 모든 것이 발명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만약 사진을 위해 필요한 광학과 화학, 그것을 연결지어 연구했던 개인들, 그리고 약간의 우연이 없었더라면 일상의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달랐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사진이 없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의 얼굴을 품속에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가나 대통령의 얼굴 역시 상상할 수 없다. 실제로 나폴레옹 시대의 사람들은 나폴레옹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그를 위해 전쟁에 나가고 세금을 냈다. 동시대의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 역시 전혀 달랐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폭격당한 시리아 알레포의 어린이가 흘리는 피와 어두운 눈망울을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사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죽음의 비참함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에서 내 몸 안 세포까지 모든 것을 보여주는 사진
인간의 인식은 사진을 통해 결정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해부학 강의가 열리던 17세기 유럽 대학의 ‘해부 극장(Anatomical theatre)’에는 인간의 몸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몰려드는 이들로 가득했다. 사진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역시 그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인간의 시각을 확장시켜 광막한 우주에서부터 몸 속의 작은 세포와 분자들에 이르는 숱한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개인의 일상과 생활 공간을 찍은 SNS와 블로그의 사진들, 신문과 TV 등 매스 미디어가 제공하는 이미지, 여행 사진가와 포토 저널리스트들이 찍은 사진들이 종횡으로 교차하며 우리 머리 속 세계의 모습을 직조해낸다. 그것은 뜨겁고 우글우글하게 붐비는 사진 이미지의 다발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사진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세계에서는 사진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인터넷에서는 세상을 떠난 대통령들을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둘러싸고 집요한 공격과 반격이 거듭된다. 평범한 이들이 사진을 퍼날라서 ‘신상을 털며’ 악인을 응징한다. 미국 대통령까지 ‘셀카’라는 낯선 행위에 동참한다. 누군가의 몸을 몰래 사진으로 찍어 가지기 위해 카메라를 품 속에 감춘 범죄자들이 나타난다. 다른 이의 얼굴 사진을 가면처럼 뒤집어쓴 페이스북 사칭 계정들은 천연덕스럽게 네트워크를 누빈다. 여배우의 얼굴과 포르노 배우의 알몸을 합성한 사진을 사고파는 몹쓸 범죄도 일어난다.
우리는 사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진의 성격은 그것의 지지체(support)가 바뀔 때마다 급격히 변화해 왔다. 예를 들어 같은 이미지라도 그것이 복제가 되지 않는 금속판에 얹혀 있을 때와 복제가 가능한 인화지로 바뀌었을 때는 전혀 다른 성격과 유통 방식을 지니게 된다. 만약 19세기 말 사진이 인쇄제판기술과 결합하여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시대적 이미지가 된 강력한 사진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랬다면 사진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평화로이 걸린 회화의 대용품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사진에게 주어진 새로운 지지체는 디지털 네트워크다. 이런 지지체의 변화는 사진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왔던 종류의 사건이다. 이제 사진은 물리적 한계를 넘어 데이터라는 새로운 ‘몸’을 지니게 되었다. 디지털 데이터가 된 사진은 빛의 속도로 전송되고, 순식간에 무제한으로 복제된다. 지금까지 사진의 어떤 지지체도 이렇게 빠르고 강력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네트워크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
물질에서 디지털 데이터로의 변화, 그 입구에 선 우리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이 연재의 목적은 디지털 환경에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사진을 이해하는 데 있었다. 발터 벤야민은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는 이가 아니라 사진을 못 읽는 이가 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진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하지만 사진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진은 인간의 손이 개입되지 않고 중립적인 카메라가 만들어낸 진실된 이미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카메라를 쥔 이들과 사진을 배포하는 권력을 지닌 이들은 그런 객관성에 대한 믿음을 이용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사진의 정치적 의미는 그것이 놓인 맥락에 따라 꽤 쉽게 변화하고, 그 신뢰성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무엇보다도 예기치 못한 정치적 격변기를 맞아 사진의 위험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만 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이어진 촛불집회와 탄핵 정국은 모든 분야의 학문과 예술을 호명하며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즉, 이는 공화국과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진의 이론과 비평이 설명해야 하는 가장 긴급한 사진 이미지를 판단하고 그 의미를 제시하는 일이었다. 매번 능력이 닿는 한 힘껏 화답하려 노력했으나, 이로 인해 셀피나 누드 사진, 몰카, 위성 사진, 현대 예술 사진 등 동시대의 흥미진진한 사진적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진을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지닌 경이로움과 즐거움의 감각을 잃지 말라는 점이다. 사진은 한편으로 분명 두렵고 교활하지만, 한편으로는 애틋하고 아름다운 존재다. 어쩌면 그런 이중성이야말로 인간이 사진에게 끊임없이 매혹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김현호 사진비평가ㆍVOSTOK매거진 편집동인
공동기획:한국일보ㆍ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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