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과의사다] (4) 엄준원 고대안산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대장암 말기환자 치료 위해 분투…환자안전ㆍ만족 위해 원칙에 ‘충실’
대장암은 참 무서운 암이다. 발병 초기뿐만 아니라 말기에도 자각 증상이 없을 수 있다. 증상이 있다 해도 복부 불편감, 빈혈, 복통, 체중감소, 전신 쇠약감 등 일반적인 증상만 호소한다. 그래서 변비나 설사로 병원을 찾았다가 대장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많다. 그야말로 사람 잡는 암이다.
고대안산병원에서 대장암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엄준원(52) 대장항문외과 교수의 첫 인상은 날카로웠다. 깡마른 체구에 눈빛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겨울비가 내리니 기분 좀 그렇죠?” 엄 교수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역시 사람은 인상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엄 교수는 자존심이 강한 의사다. 수술이 잘 되지 않으면 한 달 내내 무엇이 문제였는지 고민한다. 의사 능력이 부족하면 환자 안전과 치료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너스레를 떨지 않는다. 향후 진료 스케줄을 정확히 전달한다. 수술 전에 한 말과 수술 후 한 말이 다르면 환자와 보호자가 의사에 대한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벌써 10년 전 얘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발성 장 천공으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병원에 실려 왔다. 수술해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확률은 아주 희박했다. 두 번의 수술 끝에 환자는 되살아났다.
다음날 외래진료실에서 엄 교수는 다소 황당한 일을 당했다. 환자 누나가 외래진료실로 찾아와 엄 교수에게 넙죽 큰 절을 올렸기 때문이다. “환자 보호자에게 큰 절을 받을 줄 몰랐죠. 얼마나 기쁘면 저에게 큰 절을 했겠어요. 환자 보호자가 돌아간 후 외과의사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의 죽은 사람을 내 손으로 살렸으니까요.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해 수술하면 98%정도 완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장암은 증상이 명확하지 않아 3~4기에 대장암 진단을 받는 환자가 적지 않다. 엄 교수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수술할 수 있으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엄 교수는 “대장암 말기 환자라도 의사와 환자가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단ㆍ수술ㆍ항암ㆍ호스피스까지 ‘원스톱 치료’
엄 교수의 환자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고 온 환자는 어느 정도 심적으로 안정돼 있지만 우리 병원에서 처음 암 판정을 받은 환자는 정말 멘붕이 된다”며 “환자가 암에 걸린 것을 인지할 수 있게 시간을 끌면서 검사결과를 설명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엄 교수의 외래 진료시간은 길기로 유명하다. 엄 교수는 “외래 진료할 때 환자가 무엇이 불편하고 힘든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대안산병원의 대장암치료는 환자맞춤치료를 표방하고 있다. 다학제 진료는 기본이다. 고대안산병원은 협진시스템을 구축해 환자에게 빠르고 정확한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대장내시경 검사를 통해 환자를 진단한 후 신체검사와 영상검사(CT, MRI, PET CT)를 통해 치료법을 결정한다. 병기에 따라 점막하암의 내시경적 절제술, 최소침습수술, 항암화학요법, 항암화학방사선치료, 방사선 단독치료 등 환자맞춤치료가 이뤄진다. 엄 교수는 “대장암 진단, 수술, 항암, 호스피스까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치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 교수가 이른바 ‘칼잡이’가 된 이유가 뭘까. 엄 교수는 “어렸을 적 유난히 배가 아파 고생을 많이 했다”며 “나처럼 배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기왕이면 위장, 소장보다 대장을 맡는 것이 좋지 않나”라면서 “고대안산병원에서 대장암을 치료하는 대장(大將)으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수술방에서 수술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고 있다. 그는 “수술을 통해 암세포를 정복하는 과정에 보람을 느낀다”며 “암세포를 정복하는 것도 좋지만 죽어가는 환자를 살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외래진료, 수술로 이어지는 일상. 하지만 그는 환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늘 고민하고 있다. 엄 교수는 “외과의사는 늘 선택해야 하는 사람”이라며 “매 순간 환자를 살리는 선택을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 살아있는 ‘외과의사’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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