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할리우드는 시상식의 계절이다. 미국 각 지역의 비평가협회가 올해 최고의 영화들과 배우들을 선정하고, 여러 기술분야 수상자(또는 수상작)를 뽑는다. 미국감독조합과 촬영감독조합 등 여러 영화 직능단체들도 자체 영화상을 발표하며 한 해를 정리한다. 고만고만한 상들이 수상 결과를 릴레이 펼치듯 알린 뒤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이 절정을 이루며 트로피를 주고 받는, 파티 같은 계절은 마무리된다.
할리우드리포터와 버라이어티 등 미국 유명 연예매체에는 미국 영화사들의 광고가 넘쳐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자사 영화들에 투표해 달라는 읍소가 담긴 광고들이다. 권위 있는 영화상을 받은 작품들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이 바뀔 테니 금전적 이득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국내 영화인들은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에 눈길을 두게 된다. 한국영화는 칸국제영화제 등 해외영화 행사에서 여러 성과를 거둬왔으나 아카데미상에서는 별 실적이 없다. 1963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첫 출품된 이래 외국어영화상 수상은커녕 5개 작품이 오르는 최종 후보작 명단에 낀 적도 없다. 해외 언론도 ‘영화강국’ 한국의 아카데미 징크스를 기이하게 여길 정도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회한’이 클 듯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아카데미 출품작으로 선정한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최근 9편이 포함된 1차 후보작 명단에도 들지 못하며 충무로의 아카데미 징크스를 이어갔다. 공교롭게도 ‘밀정’에 밀린 ‘아가씨’가 미국 시상식 계절에 최고의 외국어영화로 인식되고 있다. ‘아가씨’는 로스앤젤레스비평가협회와 샌프란시스코비평가협회 등 여러 비평가협회로부터 외국어영화상을 잇달아 받고 있다. 할리우드가 위치한 로스앤젤레스의 비평가협회 수상이 특히 눈길을 잡는다. 로스앤젤레스비평가협회 수상은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결과를 예상케 하는 지표 중 하나로 종종 꼽힌다.
미국 언론들은 아쉬움과 함께 비판적 목소리를 내며 ‘아가씨’를 응원하고 있다. 미국 일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지난 10월 ‘하녀는 왜 오스카 후보가 되지 못했나’라는 기사를 통해 후보 선정 과정의 부조리를 통박했다. 각 나라의 영화기구가 딱 한 편을 선정해 외국어상에 출품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외국어상 출품 기준과 과정을 바꿔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미국 영화매체 인디와이어는 지난달 “올해는 한국이 (‘아가씨’로)저주를 깰 수 있었는데… 오스카(트로피)를 서울의 거리로 가져갈 수 있었는데… ”라는 내용이 담긴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아가씨’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여우주연상 후보뿐 아니라 여러 기술부문 후보에도 오를 만하다고 주장했다.
만약이란 말은 부질없다. 그래도 만약과 ‘아가씨’와 오스카란 단어를 조합하며 아쉬움과 함께 한 해를 보내게 된다.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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