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좋아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자동차'라는 공통 관심사로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최고의 자동차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넘어가 난상토론으로 번졌다. 세차를 좋아하는 남자와 레이스를 좋아하는 여자의 토론은 명확히 다른 취향만큼 팽팽하게 평행선만 그릴 뿐이었다. 과연 둘 다 만족하는 ‘최고의 자동차’를 찾을 수 있을까?
여 :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어도 서울은 늘 교통체증에서 벗어나질 못하네, 왜 이렇게 자동차가 많아진 거지?
남 :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품이 되었기 때문이지. 출퇴근은 물론 마트를 가면서도 차를 끌고 나가는 건 다반사니까. 나는 평일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주말에만 자동차를 쓰지만.
여 : 하긴,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타고 누군가는 레저생활을 즐길 때 쓰고 누구는 짐을 나르기도 하고 모두 용도는 다르겠지만 자동차만큼 편리한 도구가 어디 있겠어. 여자들에게는 '이동하는 개인의 사물함' 같은 용도로 쓰이니까.
남 : 개인의 사물함이라고? 신호 대기하는 중에 선바이저 거울 보면서 화장 하는 그런 짓 말야?
여 : 그건 극히 일부분 아닐까? 나는 자동차를 탈 때는 운전에만 집중하는 타입이니까. 사실 사람들이 자동차에 기대하는 성능이나 조건은 모두 다를 거야. 디자인이나 브랜드 가치만으로 자동차를 판단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남 : 맞아. 부동산하고는 다르지. 자동차는 타고 나와 함께 이동하는 거니까. 회사차로 쓰는 모닝을 끌고 나가면 도로에서 얕보는 시선이 느껴지는데 쏘렌토를 타면 비슷하게 운전하는데도 "빵빵"대는 소음이 덜하더라고.
여 : 운전을 잘 못하나? 난 스파크를 타도 경적 세례를 받은 적이 거의 없는데?
남 : 왜 이래. 10년 무사고 운전자한테. 그건 됐고 최고의 자동차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전에 내게 자동차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는 게 먼저인 것 같아.
여 : 솔직히 나는 자동차가 꼭 필요한 사람은 아니야. 대중교통이 구석구석 퍼진 곳에 사는데다 국내 여행을 자주 다니지도 않지. 같이 다닐 가족도 없는 30대 싱글인 내게 자동차는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 그저 갖고 싶은 존재야. 취미이자 삶의 낙이라고나 할까? 기분전환을 위한 도구쯤 되겠지.
남 : 난 자동차가 아주 중요해. 세차를 하고 광택을 내는 행위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 격무에 시달리는 평일에는 지하철을 타거나 정말 피곤하면 택시를 타고 뒷좌석에서 부족한 수면을 채우는 게 좋지. 밀리는 시내에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은 욕망은 털끝만큼도 없어. 내게 자동차란 달리는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스포츠 도구는 아니야. 그렇다고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고급 브랜드의 자동차도 그저 그래. 국산차인데 튼튼하고 멋지게 생긴 그런 자동차를 갖고 싶어.
여 : 나랑 생각이 다르군. 내게 자동차는 이동 수단보다는 나를 더 빠르게 해 줄,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극복시켜주는 아이언맨 슈트 같은 건데. 내년부터 자동차 경주에 출전할 생각인데 그것만 생각하면 무척 즐거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차 역시 딱 정해져 있지.
남 : 여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차와는 거리가 멀군.
여 : 예를 들면?
남 : 귀엽게 생긴 미니나 딱정벌레를 닮은 폭스바겐 비틀 같은 거 말야. 아니면 승차감이 정말 푸근한 렉서스 같은 그런 차를 좋아하지 않아?
여 : 어휴. 나는 예측하는 선에서 움직이고 내 몸을 움직이듯 조종할 수 있는 그런 역동적인 차를 원해.
남 : 그런 차는 무척 비싸지 않나? BMW가 만드는 M3 같은 차?
여 : 하지만 차체가 가벼워야만 지구 중력과 관성의 영향을 덜 받겠지. 내가 원하는 차는 물리적인 속도보다는 속도감에서 쾌감처럼 빠져들게 만들어주는 그런 차야. 아우토반에서 최고시속 200km를 낼 수 있는 차는 많아. 너무나 안정적이라 속도가 빨라져도 편안하게만 느껴지는 그런 차는, 글쎄.
남 : 나는 안전한 차가 좋아. 만약에 모를 사고에서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차 말야.
여 : 물론 수동적인 안전은 무척 중요하지만 나는 설령 사고가 나더라도 그 순간 내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여서 사고를 회피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차를 원해.
남 : 역시 레이스를 좋아하는 사람답군. 가볍고 잘 나가며 핸들링도 좋은 그런 차? 내 기준으로는 제네시스 쿠페 같은데? 지금은 단종됐다고 들었지만.
여 : 하나 더 있어. 자동차가 내겐 거의 유일한 취미다 보니 가끔 뚜껑을 열고 달리는 낭만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 다른 여자들에게 핸드백이 중요한 것처럼 내겐 자동차가 그런 역할을 할 텐데 스타일 역시 중요하지. 취향과 안목을 제대로 드러내는 게 자동차 아닌가? 나를 초능력자로 만들어주는 슈트인데 스타일만큼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
남 : 그래서 그 차가 뭔데? 완전 궁금하네.
여 : 까다로운 저 모든 조건을 부합시킬 것 같은 차가 있지. 마쓰다 MX-5. 작고 가볍고 2인승이며 컨버터블이야. 아직 시승한 적이 없어 성능이 기대에 부응할 지는 모르겠지만 해외에서 들려오는 얘기로는 충분할 것 같아. 외모는 말해 무엇해! 정말 근사하지.
남 : 난 포르쉐 박스터 정도는 얘기할 줄 알았네.
여 : 카이맨 GTS의 동력 성능에 빠진 적도 있긴 해. 예상을 뛰어넘는 가속 성능에 처음으로 심장이 마구 뛰던 차였지. 아쉬운 건 역시 가격이야. 30대 직장인이 타기에는 무리지. 아름답기로는 재규어 F 타입이 최고지만 그건 남들이 모는 걸 보는 게 제 맛이고. 혹시 최고의 자동차가 그런 차를 말하는 거야?
남 : 그렇지 않아. 난 그런 자동차는 가벼워 보여서 싫어. 난 세단을 좋아하지. 그것도 주말에 여유 시간이 날 때 디테일링 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새카만 색상이어야 해.
여 : 어떤 차인데?
남 : 지금 그랜저 HG를 타고 있어. 최근 IG가 새롭게 출시됐더라고. 현대차 영업소에 가서 꼼꼼히 보고 왔는데 오히려 구형보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덜하더라고. 뭔가 고급스러운 쏘나타 같은 느낌이 들더라.
여 : 난 괜찮던데. 디자인이 한층 젊어진 것 같아. 쏘나타가 오히려 더 나이 들어 보일 만큼.
남 : 이렇게 다를 수가! 줘도 타기 싫은 MX-5 같은 차를 최고의 자동차라고 치켜세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난 내년에 제네시스 G80이나 BMW 5시리즈를 사고 싶어. 검정색으로.
여 : 섬세한 취향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군. 건투를 빈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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