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 동안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촛불집회는 ‘문화혁명’의 장이었다. 지난해 10월 29일 1차를 시작으로 약 1,000만명이 몰린 촛불집회는 폭력 없는 평화 집회로 시위 문화의 새 역사를 썼다. ‘김치만큼이나 한국적’이란 해외 언론의 평가만큼, 새로운 시도도 많았다. 특히 눈에 띄었던 건 ‘시위 음악 문화’의 변화였다. 광장에는 ‘DJ 트럭’이 등장했고, 아이돌 댄스 음악이 울려 퍼졌다. 집회의 성격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우리의 문화적 자산들이다. 기존의 틀을 깨는 모험 없이는 축제 같은 촛불집회도 불가능했다. 전자음악팀 이디오테잎 멤버인 DJ 디구루와 밴드 스카웨이커스에서 트럼본을 연주하는 이준호가 새로운 물결의 중심에 섰다.
“지치지 않으려면 즐거워야”… 촛불집회 ‘클럽’의 DJ 디구루
“라랄라 라랄라~” 디스코 풍 리듬에 맞춰 흥겨운 비트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자, 지나가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몸을 흔들었다.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디구루의 디제잉으로 광장은 ‘클럽’이 됐다. 집회에 나온 한 시민은 어린 딸을 목마를 태운 뒤 어깨를 들썩이며 비트에 몸을 맡겼다. 디구루는 1.5톤의 소형 트럭에 턴테이블을 올려 놓고 준비해 온 음악을 틀었다. 트럭 위에서 그것도 투쟁의 현장인 집회에서 전자음악이라니. 디구루는 “촛불집회가 오래 갈거라 생각했고, 지치지 않고 버티려면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흥겨운 전자음악을 촛불을 데울 연료로 생각했다. “저항을 꼭 진지하며 무겁고 치열하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도전이다.
처음엔 망설였다. 전자음악과 집회의 성격이 맞을까 걱정했고, 부담도 됐다. 마음을 굳힌 건 청년들이 촛불집회에서 그룹 소녀시대의 히트곡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를 합창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고 난 뒤였다. 그는 “‘다만세’처럼 전자음악도 기존 집회 음악과 결을 달리하는 대안 음악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디구루는 촛불집회에서 일부러 더 흥겨운 전자 음악을 틀었다. ‘다만세’와 그룹 god의 ‘촛불 하나’와 DJ DOC의 ‘삐걱삐걱’ 등 친숙한 가요를 비롯해 미국 유명 록밴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히트곡 ‘불스 온 퍼레이드’ 등을 댄스음악처럼 리믹스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전자음악이 생소한 일부 시민으로부터 “시끄럽다”는 항의를 받았고, 물통이 날아와 공연이 중단됐다. ‘DJ 트럭’의 공연을 즐긴 시민들이 나서 충돌을 막았다. ‘내 아이랑 같이 나왔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고 더군다나 같이 즐길 수 있으면 좋은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내 준 덕분이다. 디구루는 이후 ‘DJ트럭’을 몰고 다시 광장으로 나서지 못 했다. 발전 시스템 등 운영비가 최소 1,000만원 이상 들어 외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외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디구루는 “정말 많은 걸 느낀 순간이었다”고 의미를 뒀다. “새로운 시위 문화를 만드는 과정이잖아요. 즐거운 사람이 이긴다는 걸 보여준....”
청년답게 ‘뱅뱅뱅’으로… 부산 ‘트럭돌’ 이준호
지난달 부산 서면 중앙로에서 벌어진 촛불집회에서는 ‘트럭돌’이 등장했다. 트럭을 타고 아이돌그룹 빅뱅의 히트곡 ‘뱅뱅뱅’을 패러디해 춤을 추며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친 이들이었다. “난 깨어나 촛불들과 함께, 정치 한다 볼 수 없는 막장 게릴라, 퇴진하라 목청이 터지게~” 트럭 위에 선 청년들이 노래를 하자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후렴구에 맞춰 “빵야 빵야 빵야” 대신 “하야 하야 하야”를 외치며 흥을 돋운다.
밴드 스카웨이커스의 이준호는 트럭 뿐 아니라 부산에서 열린 촛불집회 메인 공연에도 ‘뱅뱅뱅’ 패러디 무대를 선보여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뱅뱅뱅’을 시국에 맞게 개사해 무대에서 노래까지 부르기는 이들이 처음이다. 밴드 멤버가 아이돌 그룹의 댄스음악을 시위 음악으로 택했다는 게 흥미롭다. 그는 “기존의 닫혀 있는 집회 문화가 싫었고,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어서 한 일”이라고 했다. 노동가가 아닌 대중음악으로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면서 ‘청년스러운’ 방식으로 저항하기 위해 ‘뱅뱅뱅’ 패러디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뱅뱅뱅’의 저돌적인 가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는 농담도 보탰다. 이준호는 ‘뱅뱅뱅’ 외에 전인권의 ‘행진’을 ‘퇴진’으로 바꾼 시국 노래도 내놨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이준호는 ‘부산 인디 음악신의 이승환’으로 떠올랐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서면의 한 백화점 인근에서 매주 거리행진을 이끈다. “목소리가 안 나와 고생”도 했지만, 그가 꾸준히 거리에 나서는 이유는 “소외된 청년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다. 이준호가 속한 스카웨이커스는 지난해 7월 낸 노래 ‘호랑이 기운 솟아나요’에서 청년에 ‘아프기’를 강요하는 시대의 모순을 꼬집었다. 식민지 시절 한을 풀기 위해 자메이카 사람들이 불렀던 스카처럼, 청년들의 설움을 노래하는 게 이들의 음악적 방향성이다.
이준호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본 무대 공연에서기도 했다. “100만명의 함성이 준 전율을 잊을 수 없다”는 그는 앞으로도 부산 촛불 집회에서 밴드 멤버들과 꾸준히 공연할 계획이다. “(박 대통령이)내려 올 때까지 하려고요. 노래와 춤이 제가 가진 강력한 무기니까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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