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그때 같이 있던 사람이 여자친구니?”라는 아버지의 질문, 아들은 “아니에요. 그냥 친구예요”라고 답한다. 장면2. “그 사람이 전에 말했던 네 애인이야?”라는 아버지의 질문, 아들은 “아니에요. 아직까진 여자친구로 만나고 있어요”라고 답한다.
내겐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다. 장면1의 대답이 “아니에요. 여자사람친구예요”거나 장면2의 대답이 “네. 여자친구 맞아요”라면 난 이 대화를 무척 어색해할 것이다.
‘여자사람친구’, 줄여서 ‘여사친’은 젊은 세대가 쓰는 새말이다. 그 반대말은 ‘남자사람친구(남사친)’. 그런데 이 말들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일어난 여러 언어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 낱말의 의미는 다른 낱말과의 관계 안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이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 그 체계에 있는 모든 낱말들의 의미도 따라 변한다. 나는 아직까지 이성 관계의 정도를 ‘애인, 여자(남자)친구, 친구’라는 세 낱말의 관계 안에서 이해한다. 그런데 젊은 세대의 대화에서는 ‘애인’이란 말이 잘 쓰이지 않게 되면서, 이러한 낱말들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 듯하다. 불안정한 ‘애인’의 의미를 ‘여자(남자)친구’가 넘겨받으면서, 이성 관계의 정도가 ‘여자(남자)친구’와 ‘친구’의 관계 안에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에 대한 연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친구’라는 말에서 또래나 동성 친구만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니 꾸밈말을 덧붙여 ‘친구’의 범위를 정하게 되었다. ‘여자인 친구’이면서 ‘그냥 친구’라는 의미로, ‘여자’와 ‘사람’을 조합한 ‘여자사람친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세상에 맥락 없이 나온 말은 없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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