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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원근법] 민주주의의 민주화

입력
2017.01.0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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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987년 6월항쟁이 30주년을 맞는다. 감회가 없지 않을 수 없다. 내 젊은 시절에 가장 심원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6월항쟁을 지켜보면서 나는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연구를 직업으로 삼게 됐다. 역사적 차원에서도 6월항쟁은 산업화 시대를 넘어 민주화 시대를 여는 계기를 이뤘다. 대통령 직선제 등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군부독재 국가에서 정상 민주국가로 전환시켰다.

그런데 6월항쟁이 가져온 지난 30년의 민주화 시대를 돌아보는 마음은 복잡다단하다. 한편에서 민주화 시대는 민주주의 원리들을 뿌리 내리게 했고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민주화 시대에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그 이후 불평등이 점증했다는 점에서 역설적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민주주의란 본디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증진시키는 제도일 터인데, 6월항쟁 이후 지난 30년 동안 불평등의 증대가 진행됐다는 것은 ‘민주화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우려할 만한 상황은 최근 자유의 증진도 의문시된다는 점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자유의 영역에서도 우리 사회는 과거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는 반(反)정부를 반(反)국가와 등치시키는 극단의 권위주의 방식으로 국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했다. 박근혜 정부 아래 우리 사회 현실이 정치와 거리를 둔 채 부단히 자기검열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1970년대로 후퇴했다는 생각을 갖는 이가 나만은 아닐 거다.

민주화 시대 30년을 맞이하면서 조우한 이러한 현실은 민주주의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매스터 프레임’임을 깨닫게 한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일궈온 민주주의 성취들은 분명 존재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넘어서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호주제 폐지,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 시도 등에서 볼 수 있듯 민주주의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의 미완의 과제와 새로운 과제 역시 존재한다. 경제 영역의 민주화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속적인 권력 감시를 통해 말의 자유를 유지하는 게 미완의 과제라면, 변화하는 21세기 세계사적 국면에 적극 대응해 지구적 시민권 및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것은 새로운 과제다.

요컨대 현재 우리 민주주의가 직면한 과제는 일찍이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말한 ‘민주주의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democracy)라 부를 수 있다. 기든스가 제시한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세계화 시대에 요구되는 권력의 지방 이양, 국가와 시민사회의 이중 민주화, 공공영역의 쇄신, 행정적 효율성의 증대, 직접 민주주의의 강화, 그리고 위험 관리자로서 정부 역할의 제고 등을 포괄한다. 주목할 것은, 민주화 시대 30년을 맞이한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과제가 앞서 말한 미완의 과제와 함께 ‘민주주의의 민주화’의 핵심 내용을 이룬다는 점이다.

오늘날 어느 나라에서든 민주주의에 대해 분명한 사실은 두 가지다.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정치제도가 부재하다는 게 하나라면, 민주주의의 가치와 시장경제의 효율을 동시에 증진시킬 수 있는 모델 개발 및 실천이 중대한 제도적 과제라는 게 다른 하나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강조했듯, 21세기에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간의 긴장은 끊임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정치적 평등에 손실을 가져올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시장경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 시점이 언제일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올 봄과 여름에는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일곱 번째 정부가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열리기 시작한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유력 후보들은 다양한 시대정신의 경쟁을 펼쳐 보이고 있다. 성장도 중요하고 복지도 중요하다. 외교도 중요하고 안보도 중요하다. 이 과제들 못지않게 중요한, 이 과제들을 관통하는 기본 가치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다. 2017년 올 한 해, 우리 민주주의가 민주화되는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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