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코치에게 사이클을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던 105세 프랑스 노인이 사이클 고령자 부문 신기록을 연거푸 수립하며 사이클 역사를 새로 썼다.
AP통신과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로베르 마르샹은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인근 생캉탱앙이블린의 국립 경륜장에서 1시간 동안 22.547㎞를 달려 105세 이상 부문 세계기록을 세웠다. 사이클로 1시간 동안 달린 거리를 측정하는 것인데 기존에는 100세 이상 부문만 있었으나 사실상 홀로 고령 부문을 개척하고 있는 그를 위해 최근 105세 부문도 신설됐다. 마르샹은 경기를 마친 뒤 “라이벌이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샹은 100세를 맞았던 2012년 처음 100세 이상 부문에서 신기록을 세웠고 2년 뒤 26.927㎞를 달려 자신의 기록을 깼다. 이번 기록은 2014년 기록보다 4.4㎞가 짧지만 105세 이상 선수 중에서는 세계 신기록이다.
이날 경기장에서 관중들은 마르샹이 달리기 시작한 지 1시간이 다 돼 갈 즈음 ‘로베르’의 이름을 연호했고 경기를 마친 뒤에는 기립박수로 그의 투지를 응원했다. 사이클에서 내려온 그를 취재하기 위해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리기도 했다. 그는 신기록 달성 후 “경기 종료 10분 전을 알려주는 신호를 보지 못했다”며 “봤다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다리가 아플 것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팔이 아플 뿐인데 그건 류머티즘 때문”이라며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105세도 아직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달리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전 연령대를 통틀어 사이클 1시간 세계 기록은 지난해 은퇴한 영국 선수 브래들리 위긴스가 재작년 세운 54.526㎞이다.
전직 소방대원이었던 마르샹은 1911년 프랑스 아미앵에서 태어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 1940년대 말 베네수엘라로 이주해 트럭 운전사로 일했다. 이후에는 캐나다로 건너가 벌목공이 됐다. 1960년대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마르샹은 생계 때문에 운동은 꿈도 꾸지 못하다 68세에 다시 사이클에 도전했다. 그는 1992년 프랑스 파리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자전거 완주에 성공했고, 2012년에는 100㎞를 시속 23㎞ 이상으로 주파해 100세 이상 연령대에서 가장 빠른 사이클리스트가 됐다.
마르샹은 152㎝ 키에 체중이 52㎏인 왜소한 체구의 소유자이지만 과일과 야채를 즐겨 먹고 육류 섭취를 줄이는 식습관,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매일 반복하는 사이클 연습으로 체력을 단련해왔다. 그의 친구이자 동료이자 코치인 제라르 미슬러는 “10대 시절 마르샹에게 ‘넌 체구가 너무 작아서 사이클에 어울리지 않다’고 말한 코치가 오늘 그를 봤더라면 아마 자신을 한 대 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샹은 최근 동물들을 잔인하게 대우하는 실태를 고발한 언론보도에 충격을 받아 육식을 완전히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담당하는 생리학자인 베로니크 빌라트는 AP통신에 “마르샹은 크고 튼튼한 심장을 갖고 있어서 많은 양의 피를 순환시킬 수 있다”며 “그가 다시 육식 섭취를 하고 근육을 키운다면 오늘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 근교의 작은 아파트에서 매달 연금 900유로(약 112만원)로 생활하는 마르샹은 “누구든 계속 근육을 쓰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매일 규칙적으로 사이클 연습을 하고 있다. 미슬러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것이 마르샹의 특징”이라며 “그가 다시 신기록을 쓰고 싶다고 하면 나도 투지를 불태울 것이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모범이 되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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