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등 1, 2학년부터 순차 적용
초등 SW수업ㆍ중등 자유학기제
고교는 문ㆍ이과 벽 없애는 대신
공통ㆍ일반선택ㆍ진로선택 나눠
수능서 탐구과목 선택 제한 여전
융합형 인재 양성 목표에 걸림돌
초등 수업 늘어 부담가중 우려에
현장 검토 없는 잦은 개편도 비판
교육과정은 공교육의 밑그림이자 설계도다. 초중고교의 교육 목표와 내용, 방법 등이 여기에 담긴다. 2015년부터 주로 중고교 역사 국정교과서와 묶여 교육과정이 거론됐다. 당초 정부가 올 신학기 도입할 계획이었던 국정교과서에 새 교육과정(2015개정)이 적용돼서였다. 현 정권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근년 초미의 관심사이자 논란거리였는데 광범한 반발을 이기지 못한 정부가 임기 내 달성 목표를 접고 적용 시기도 내년으로 미루며 일단 급한 불은 꺼진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2015개정교육과정 개발 전반이 졸속이었다는 현장 비판은 꾸준했다.
뭐가 바뀌나
2015년 9월 교육부가 확정 고시한 2015개정교육과정의 별칭은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다. 기초 소양 교육 강화가 핵심이다. 특히 고교 과정에서 문ㆍ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이 배우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한국사 과학탐구실험 등 공통과목을 도입하고 사회와 과학의 경우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신설하기로 했다.
더불어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울 수 있는 학생 중심 교육과정도 마련된다. 학생의 진로ㆍ적성을 고려한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이 대표적이다. 교과별로 꼭 배워야 할 핵심 개념 및 원리 위주로 학습 내용을 정선해 감축함으로써 핵심 역량을 키워주겠다는 포부도 함께 제시됐다.
달라지는 것들을 학교 급별로 보면, 우선 초등학교는 1, 2학년의 주당 수업시간이 1시간 늘고 추가 시간에는 ‘안전한 생활’이라는 과목이 편성된다. 또 1, 2학년이 받는 한글 교육이 현행 27시간에서 45시간 이상으로 늘었다. 5, 6학년 때는 소프트웨어(SW) 교육도 이뤄진다. 실과 시간을 활용한 17시간 안팎의 기초소양 교육을 통해서다. 1학년부터 초등학생들은 한 학기에 책을 1권 이상 읽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등 통합 수업이 시행된다. 5, 6학년 국어에는 연극 대단원이 개설된다. 한자 병기 방침은 2019년부터 5, 6학년 교과서에 300자가 넘지 않게 표기하는 안이 확정됐다.
중학교는 자유학기 실시가 가장 큰 변화다. 이미 지난해부터 모든 중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는 학생들이 지필시험 부담 없이 체험중심 교과 활동과 진로 탐색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SW 교육 강화 차원에서 정보 과목이 필수화하기도 했다. 정보화 사회의 기초 소양 함양이 명분이다.
고교에서는 문ㆍ이과 구분이 사라지고 공통 일반선택 진로선택으로 과목이 나뉜다. 공통 일반선택 진로선택 순으로 이수하면 되는데, 진로 계열에 따라 선택과목이 달라진다. 예컨대 수학의 경우 어문ㆍ예술 계열은 일반선택으로 수학1, 확률과통계를 이수하면 되지만 경상 계열은 일반선택으로 수학 1, 2을 듣고 진로선택으로 경제수학을, 이공 계열은 일반선택으로 수학 1, 2와 미적분을 듣고 진로선택으로 기하, 수학과제탐구를 마치는 식이다.
2015개정교육과정은 올해 초등학교 1, 2학년을 시작으로 내년 초 3, 4, 중 1, 고 1, 2019년 초 5, 6, 중 2, 고 2을 거쳐 2020년 중 3, 고 3까지 연차적으로 적용된다. 교육부는 새 교육과정이 고교에 적용되기 전인 올해가 가기 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뭔가
먼저 문ㆍ이과 편식 교육 극복이 새 교육과정의 핵심 명분이라면 대입전형 개편 없이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무늬만 통합’ 과정이라는 것이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문ㆍ이과 장벽이 공고해진 건 교육과정 탓이 아니라 대학이 학생을 뽑을 때 문ㆍ이과로 계열을 나눠 수험생에게 계열별 수학과 탐구 종류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대입전형을 먼저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교육과정상으로는 2000년 이후 문ㆍ이과 장벽이 없어졌다. 1997년 7차 교육과정 이후 명목상으로 고교생은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할 수 있다. 그러나 수능 탐구 영역에서는 선택이 제한돼 있다. 문과생은 사회에서만, 이과생은 과학에서만 두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수능 때 선택하지 않는 과목을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엉뚱한 이해관계 관철 탓에 정부 약속과 거꾸로 학생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도 크다. 지난해 9월 현직 교사 3,331명은 교육부에 전달한 의견서를 통해 “초등학교 1, 2학년에 신설된 ‘안전한 생활’은 세월호 참사 책임을 학교로 떠넘기면서 어린이의 건강을 위해 줄여야 할 초등 수업시수를 외려 늘려버렸다”며 “초등 소프트웨어 교육 도입도 발달 단계에 대한 고려 없이 대통령과 사기업의 요구에 떠밀려 들어온 것”이라고 성토했다. 손민호 인하대 교육학과 교수도 “학습량을 감축하기 위해 새로 실험된 교육과정 구성방식이 되레 학습량을 늘릴 공산이 크다”며 “특히 융합 과목으로 새로 도입되는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는 실험적 방식이어서, 충분히 정련되지 못한 채 난도를 높이는 식으로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잦은 졸속 개정도 도마에 오른다. 2007개정교육과정과정 고시 이후 2013년까지 7년 동안 11차례나 전면ㆍ부분 개정되더니 현행 과정이 초중고교 전체에 모두 적용되기도 전인 2015년 9월에 또 개정된 데다 현장의 충실한 검토도 없었다는 것이다. 손민호 교수는 “정책의 잦은 부침 속에 커지는 건 사교육”이라며 “교육과정과 수능이 제각각 바뀌는 불확실한 정책 환경에서 학부모 학생은 그나마 해법을 제시하는 사교육시장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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