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내역 은폐ㆍ차명계좌 폐기도
‘휴대폰은 전자레인지에 돌려야 한다.’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치밀하게 증거 인멸을 계획한 정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문건들이 법정에서 제시됐다.
5일 최순실(61)씨와 안 전 수석 등 국정농단 주역들의 첫 공판에서 안 전 수석 측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면서, 특히 증거인멸에 대해선 강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안 전 수석의 변호인은 “(공소사실에 지난해 10월 중순) 안 전 수석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게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휴대폰을 폐기할 것을 종용했다고 돼 있다”면서 “자신의 휴대폰을 여러 대 압수당한 안 수석이 다른 사람에게 ‘폰을 없애라’고 지시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고 되물었다. 검찰의 공소사실이 터무니 없다는 취지의 반박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법정에서 안 전 수석의 서울 자택에서 압수한 증거인멸 관련 문건 7건을 제시하는 걸로 안 전 수석 측의 입을 막았다. 해당 문건에는 ‘휴대폰 교체가 가장 중요하다’ ‘휴대폰 액정 우측 상단 3분의1 지점을 집중 타격해 부숴야 한다’ ‘휴대폰은 전자레인지에 돌려 물리적으로 복원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이 안전하다’ ‘휴대폰은 위치추적 안 되는 강이나 다시 찾을 수 없는 장소에 폐기’ ‘연락처를 삭제해 카카오톡 자동 친구 등재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등 증거인멸에 고심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도저히 없앨 수 없는 증거들에 대해서도 고심했다. ‘지난 1년간 통화내역은 은폐 방법이 없어서 별도 방법 강구’ ‘하이패스 기록, 폐쇄회로(CC)TV 등은 조치할 방법이 없으니 별도의 소명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차명계좌가 있을 경우 통장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통났다. ‘극비 행선지 이동시 휴대폰은 꺼라’‘가급적 현금으로 거래해야 한다’는 범죄자들의 행동강령 같은 내용까지 발견됐다.
검찰은 “안 전 수석이 증거인멸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자료이며,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전 수석은 특유의 꼼꼼함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깨알처럼 받아 적은 업무수첩(17권)을 압수수색 당하면서 대통령을 옭아맬 증거의 제시자가 된데 이어 청와대의 조직적 증거인멸 물증까지 제공한 셈이 됐다.
검찰은 또 정호성(48)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압박하는 카드로 최씨에게 유출된 청와대 문건 257건을 증거로 더 내겠다고 밝혔다. 정 전 비서관이 지난달 29일 재판부터 갑자기 변호사를 바꿔 태블릿PC 감정 등을 물고 늘어지자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부합되는 47건 외에 추가로 자료를 더 내서 맞대응하는 차원이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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