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출판 동향을 알면 그 사회구성원들이 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016년을 결산하는 자리에서 한 출판평론가는 지난해 출판 동향을 몇 가지로 요약했는데,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 ‘채식주의자’ 열풍이나 높아진 여성혐오에 대한 감수성이 촉발한 페미니즘 도서의 러시와 같은 흐름과 더불어 ‘교양과학의 약진’을 하나의 트렌드로 꼽았다. 2015년에 이어 두 해 연속 교양과학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이 지속되고 있으니 내년 이맘 때쯤엔 더 이상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교양 과학서의 출간 러시를 이끄는 서적들은 대부분 대중용 초보서다. 이건 피라미드의 밑면이 넓은 이치와 같아서 수요도 많고 출판사의 시장진입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독자 입장에선 교양과학서가 많다 보니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망설이게 되고 선택이 쉽지 않다. 기실 비슷비슷해 보여도 각기 다른 책들인데 다르면 어떻게 다를까? 산 봉우리에 올라가는 코스가 다양하듯, 교양 과학에 오르는 코스도 여럿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좋겠다. 오늘은 교양과학 신간을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해보자.
첫째 코스는 ‘정공법’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한 권으로 과학의 주요 토픽을 망라한다. 다양한 주제를 주마간산으로 훑어내지만 독자들이 중고등학교 때 공부한 풍월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과목별로 나눠서 배웠던 내용을 한 권으로 통합해서 제시하되, 전체상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과학이 이런 것이었구나!”하면서 뭔가 알 것 같은 뿌듯함을 주는 게 이런 책들의 최대 장점이며, 책읽기의 성패는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힘입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문답법’이라고 해두자. 과학 탐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다양한 질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과학적인 지식과 방법으로 풀이를 제시하는 책들이 있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질문에 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과학적 사고방식을 깨우쳐 주고 과학의 위력을 과시하여 ‘아하! 그렇구나!’하고 유레카를 외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발생론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현기증 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인류지만 불과 몇 백 년, 몇 천 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무지와 미신이 기본이었다. 과학적 발견과 지식의 축적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중첩적으로 이룩된 것이어서 과학사를 통해 그 역사적 과정을 추적해 나가다 보면 과학이 쉽게 이해되기도 한다. 특히 과학자들의 삶을 추적하다 보면 무척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아서 연예계 가십 못지 않게 재미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교양과학 서적 중 프랑스의 과학저술가 브뤼스 베나므랑의 ‘대단하고 유쾌한 과학 이야기’(까치 발행)는 첫 번째, 즉 정공법을 택한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베나므랑은 물질에서 시작해 빛, 전자기학, 태양계, 고전역학과 생명, 열역학, 특수상대성이론, 일반상대성이론 등 과학의 전 분야를 망라해 특유의 위트를 섞어 재미있게 서술한다. 왜 하늘은 파랗게 보일까? 자석이 자기를 띠는 이유는 무엇일까? 엔트로피가 높아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일반’은? 읽다 보면 이에 대한 답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에 충실한 책으로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동아시아 발행)가 최신간이다. 사실 이 분야는 경쟁이 치열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 작년에 소개했던 미첼 모피트의 ‘기발한 과학책’(사이언스북스 발행)이나 랜들 먼로의 ‘위험한 과학책’(시공사 발행)처럼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책들이 많다. 국내 저자가 쓴 ‘사이언스 빌리지’는 일상 경험 속에서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아빠가 대답하는 문답체로 되어 있어 읽기 쉬우며, 저자가 직접 그린 상세한 그림이 이해력을 높여준다. 읽다 보면 ‘미용실 파마 냄새는 왜 그렇게 지독한지’ ‘빛과 열과 온도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껌을 씹다가 팝콘을 먹으면 왜 껌이 점차 사라지는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에 깊은 과학 원리가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코스로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신간 ‘문제적 과학책-문과형 뇌를 위한 과학적 사고의 힘’(월북 발행)이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The Story of Western Science’여서 직역하면 ‘서양과학사 이야기’지만, 기존 과학사의 서술 방식과는 매우 다르다. 저자는 9쪽에서 “이 책은 약간 다른 종류의 과학사다. 이 책에서는 위대한 과학 저술의 발달사를 따라간다. 과학에 관심 있는 비전공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라고 말한다. 실제 이 책은 위대한 과학 원전 36권을 담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 원전뿐 아니라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같은 현대 과학책까지 한 권에 집약하고 있다.
자신이 약간 이론적인 스타일이라면 첫 번째 책을, 대화체의 친절한 설명과 그림을 원한다면 두 번째 책을, 과학사 기초강의를 통해 교양 과학에 접근하고 싶다면 세 번째 책을 선택하면 되겠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코스는 엄밀히 말해 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등산과 달리 한 코스만으로는 정상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 과학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룹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4인의 서재’ 코너를 새로 연재합니다. 이형열(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운영자)ㆍ정우영(시인)ㆍ임지현(서강대 교수)ㆍ정소연(SF작가)씨가 과학책, 에세이, 해외서적, SF 장르물에 대한 얘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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