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가 사회비판적이다. 아스팔트가 현대사회의 삭막함을 상징하고, 정글이 약육강식의 현실을 대변한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자본주의의 비정이 ‘아스팔트 정글’이라는 제목에 녹아있다.
영화 ‘아스팔트 정글’은 1950년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 필름 누아르의 대표작으로 종종 호명되는 이 영화는 보석상 강도를 소재로 여러 인간군상의 욕망을 스크린에 펼친다. 1,200만 관객을 모은 ‘도둑들’(감독 최동훈) 등 여러 범죄영화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다. 부나비처럼 돈을 향해 덤벼들다 파멸에 이르는 각개 인물의 비극적 운명이 서늘하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 갇힌 인물들을 렌즈 삼아 시대의 부조리를 들여다보려는 감독의 연출 의도가 돋보인다.
만들어진 지 70년 가까이 된 고전영화를 새삼 소환한 것은 최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 문서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국정 농단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이름으로 작성된 답안지다. 특검에 의해 구속된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해 1학기에 강의한 ‘영화스토리텔링의 이해’라는 과목에서 정씨 이름으로 제출된 답안지의 답 중에는 ‘아스팔트 정글’이라는 그리 대중적이지 못한 영화명이 적혀 있다. 영화에 대한 조예가 깊거나 수업을 충실히 듣지 않았으면 쓰지 못할 답이다(다른 문제의 수준도 ‘아스팔트 정글’ 못지 않게 높다). 신묘하게도 정씨는 독일 체류 중이라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을 텐데도 14개의 문제 중 10개를 맞혀 과목에 할당된 3학점을 이수했다. 당연히 누군가가 대리로 답안을 작성했고 류 교수가 이를 용인하거나 사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클 수 밖에 없다.
‘아스팔트 정글’의 메가폰은 존 휴스턴(1906~1987)이 쥐었다. 30년 전 세상을 뜬 감독이니 웬만한 영화 팬 아니면 귀에 설 이름이다. ‘말타의 매’(1941)와 ‘무기여 잘 있거라’(1957), ‘왕이 되려던 사나이’(1975), ‘승리의 탈출’(1981), ‘프리찌스 오너’(1985) 등을 만든 감독이라면 무릎을 칠까? 배우 앤젤리카 휴스턴의 아버지라면 반가워할 이름일까?
여러 고전을 빚어냈던 명장 휴스턴은 스크린 밖 행동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50년대 전반 매카시즘 광풍이 할리우드를 덮쳤을 때 그는 담대한 행동으로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미국 하원에 설치된 ‘비미국적 행위 조사 위원회’(HUAC)의 활동에 반감을 드러냈고, 공산주의 활동을 한 것으로 여겨진 영화인이나 그들과 교유한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 탄압에 앞장 서 반대했다.
휴스턴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많은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고초를 겪었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11개의 가명을 활용해 시나리오를 쓰고, 남의 이름으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을 2차례나 수상한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의 고난은 그래도 행복한 축에 속한다(그의 곡절 많은 삶은 영화 ‘트럼보’에 잘 묘사돼 있다). 연기력을 갖춘 스타 배우 존 가필드(1913~1952)는 HUAC 청문회에서 묵비권을 행사한 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이른 나이에 심장병으로 숨졌다. ‘밤 그리고 도시’(1950)와 ‘페드라’(1962)의 감독 줄스 다신은 유럽으로 건너 가 이력을 이어야만 했다. 휴스턴은 할리우드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에 환멸을 느껴 1952년 아일랜드로 이주했다. 대리로 작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답안지 속 답 ‘아스팔트 정글’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정유라씨는 알고나 있을까. 지하의 휴스턴 감독이 이 사실을 알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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