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데이터 혁명 현실은 제품 고도화ㆍ새 가치 제공 등
본질 놔둔 채 유행처럼 여겨… 정부의 각종 규제는 그대로
컨트롤타워 역할도 미흡 전략적 위치 빨리 정해야
세계 곳곳에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우리 정부도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며 밑그림을 그리고 시작했고 기업 총수들도 정유년 첫 일성으로 변화와 혁신을 통한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관련 융ㆍ복합 기술의 발전과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와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강호석 LG유플러스 빅데이터센터장은 한국일보와의 신년 특별 대담에서 한 목소리로 4차 산업혁명이 ‘기회이자 위협’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기회인 것은 맞지만 “유행처럼 따라 했다간 선진국과의 격차만 더 벌어질 것”이라는 묵직한 경고에도 방점을 찍었다.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수립하면서 우리 산업에 적합한 방향으로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문이다.
토론=정우성 장석인 강호석
사회=한준규 산업부 차장
4차 산업혁명, 왜 데이터혁명인가
사회= 4차 산업혁명에서 데이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정우성 교수=지금 우리가 말하는 데이터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데이터다. AI가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많은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주면서 산업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데이터가 지금까진 찾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줄 것이고 결국 새로운 시장과 산업, 매출을 만들어낼 것이다.
장석인 연구원=데이터 혁명은 단순한 공장의 자동화가 아니다. 상품 디자인부터 제작, 배달, 사후 서비스, 소비자의 이용 습관 등 모든 과정을 데이터로 분석해 다시 제조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 지멘스 등이 앞서가고 있다. 중국이 규모의 경제로 치고 올라오자 선진국들은 전방위적 생산성 향상이 필요했다. 새 타이어를 만들려면 시제품을 제작해 2,3년간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했지만 이 과정을 전부 데이터로 가상화시키면 6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 파종기 하나에도 날씨 정보, 토양 상태 등 모든 걸 연결해 몇㎝ 깊이로 씨를 심는 게 가장 적절한지 데이터가 결정하는 시대다.
우리는 어디까지 왔나
사회=우리 기업들은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강호석 센터장 = 과거에는 기업들이 데이터를 쌓아두기만 했다면 이제는 데이터를 꺼내 분석하고 경영에 접목하고 있다. 내부 효율성을 높여 비용을 줄이고 추가 매출을 창출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신규 매출을 창출하고 있다. 각종 특허나 논문 데이터를 분석해 앞으로 어떤 기술이 발전할지도 예측한다. 새로운 사업 도출의 기회로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사회=혁신으로 와 닿는다기 보단 데이터의 가능성에 기대하는 수준으로 느껴진다.
정 교수 = 4차 산업혁명 대응은 기업 수장이 큰 방향을 세운 뒤 과감한 결단과 투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일부 기업들은 수장이 바뀔 때마다 기업의 방향성도 바뀐다. 생산 공정에 기계학습(머신러닝)을 접목하라면서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붙여주는 게 현실이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교수가 아니라 공정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기본적 이해도 부족한 셈이다.
장 연구원 = 얼마나 싸게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파느냐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건 아주 기본적인 수준이다. 청소기 하나를 만들어 배달하더라도 이 고객의 사용 습관으로 봐선 언제쯤 부품을 갈아줘야 하고 또 어떤 상품이 이 고객에게 적합한지 추천하는 등 제품 고도화와 새로운 가치 제공이 신속히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 정부와 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빅데이터라는 무형 자산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기엔 기업도 정부도 아직 신뢰나 확신이 부족한 상태다. 마치 4차 산업혁명을 유행 수준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강 센터장 = 보통 대기업이 경영자에게 주는 기회는 최대 3년이다. 단기에 성과를 내야 하는데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할 지 의문이다. 기업이든 정부든 결과만 원하는 건 문제다.
사회 = 정부의 대응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는 뜻인가.
장 연구원 = 신제품, 신산업이 각종 규제와 부딪힌다. 우리나라는 특히 개인정보와 관련해선 기본적으로 사후 보다는 사전적으로 문제를 예방하려는 경향이 크다. 먼저 실용적으로 이용해 보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대응하는 미국과는 정반대다. 데이터 활용을 시작하는 아주 초기 작업부터 막혀있으니, 어쩌면 빅데이터 기반의 산업혁명에서 우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마치 AI 분석 인력이 다 준비가 돼 있는 듯 미국이랑 똑같이 가겠다고 한다. 이미 고급 인력의 대부분은 구글이 데려간 상태다.
정 교수 =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4차 산업혁명을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는 하는데, 연구개발(R&D)과 산업 혁신, 고등인력 양성 등이 모두 따로 놀고 있다. 지금까진 연결이 안돼도 괜찮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기술개발, 산업정책, 인력양성 등을 아주 유기적으로 연결해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기술 개발 지원만 해주면 시장이 알아서 부를 창출해낼 것이란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4차 산업혁명의 ‘빛과 그림자’ 동시에 봐야
사회 = 자동화 수준이 올라갈수록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장 연구원 = 4차 산업혁명은 기회이자 위협이다. 상품을 팔기 위해 백화점으로 배달하고 진열하고 구매한 고객의 집을 방문해 점검하던 과정이 생략될 것이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기회가 사라지니 분명 없어지는 일자리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하고 분석하는 사람은 더 많이 필요하다. 업(業)의 성격이 바뀌는 것이다.
강 센터장 = 제조업의 경우 대기업 업무는 그나마 전산화가 돼 있지만 협력사와 중소기업들은 아직 아니다. 앞으로는 원자재 흐름의 모든 과정을 연결해야 하는 만큼 밑단의 기업들은 연결고리에서 배제되는 경우 위기를 맞을 것이다.
정 교수 = 빠르게 대체 가능한 일상적인 업무부터 정리될 것이다. 저소득층, 저교육층은 5~10년 동안 직접적 타격을 받게 된다. 결국 굉장히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더 심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낳을 것이다. 직업의 성격이 바뀌면서 40,50대 중장년층에서 나올 수많은 실직자에 대한 재교육,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한다.
기업ㆍ정부가 이끌고 개인도 변해야 생존
사회 = 위기가 아닌 기회를 잡기 위해 기업과 정부, 사회 구성원들에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장 연구원 = 전략적 위치를 빨리 정해야 한다. 미국만 따라가선 안 된다. 노동 시장의 변화도 세심하게 관찰해 새로 생기는 분야로 사람들을 옮겨주는 것도 정부가 해줘야 한다. 오너 체제에서 최고경영자(CEO) 체제로 바뀐 뒤 시야가 짧아진 국내 기업들도 상황을 더 절박하게 인식하고 최소 10년을 내다보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
정 교수 = 사회적 합의도 중요하다. 개인 정보가 잘못 활용된 사례만 부각시켜 데이터 활용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혜택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 기회를 봐야 한다. 스스로 변화에 적응하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정리 =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사진 =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정우성 포스텍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8년부터 포스텍(옛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 전문위원이기도 하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96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성장동력연구센터 소장, 산업경제연구센터 소장 등을 거쳤고 2014년 산업경쟁력연구본부 신산업실 선임연구원이 됐다.
◆강호석 LG유플러스 빅데이터센터장은
서울대에서 계산통계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00~2008년 시스템 비즈니스 대표, 로고시스템 상무 등을 거쳤다. 2009년 LG디스플레이 전문위원으로 데이터를 활용한 품질 고도화를 총괄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