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살아나온 것이 유가족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죄지은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유가족들 뵙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차디찬 바다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경기 안산 단원고 출신 생존학생 9명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혼자만 살아 돌아왔다는 미안함 그리고 함께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이 뒤섞인 채 살아 온 지난 1,000일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힘든 하루하루였다.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공개된 집회에서 발언한 것은 처음이다. 발언이 끝나자 자녀를 잃은 세월호 유족 9명이 무대 위로 올라 이들을 품에 안았다. 부모들은 희생자들의 얼굴이 모두 들어간 노란 망토를 몸에 둘러 여전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살아남은 학생들과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포옹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시민들은 함께 흐느끼며 아픔을 나눴다.
이날 낮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은 노란색 물결로 넘실거렸다.“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적힌 노란 풍선을 들고 3살 딸아이 손을 잡고 있던 문희숙(35)씨는 “오전 내내 멍하니 뉴스를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고, 노력하면 다 잘 살수 있는 나라가 되길 간절히 희망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퍼포먼스도 눈에 띄었다.‘마린보이’라는 예명으로 공연을 하던 이성형(37)씨는 9개의 자전거 펌프로 공기를 주입하는 뱃고동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이씨는“아직 인양되지 못한 세월호가 광화문에 와 있는 것처럼 뱃고동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고 싶었다”며 “미수습자 9명을 생각하며 9명의 시민들이 펌프를 눌러 공기를 주입하게끔 설계했다”고 말했다.
새해를 맞아 주최 측에서 마련한 ‘바꾸자 3개를 말해봐’ 행사에 참여한 주부 한남숙(41)씨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소원으로 적어 바닥에 놓았다. 한씨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있지만 정부가 유족들에게 제대로 밝힌 것이 없다”며 “풀리지 않는 참사 의혹들과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집회에 앞서 세월호 국민조사위원회 발족식도 열렸다. 세월호 참사에서 아들을 잃은 장훈 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 분과장은 “세월호 참사 발생 1,000일이 지났지만 단지 1,000번의 4월16일이 지났을 뿐”이라며 "내 아들을 떠나 보낸 뒤 우리 가족의 시간과 달력은 넘어가지 않았다. 달력을 넘기려면 진상규명이 조속히 선행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본집회도 어느 때보다도 엄숙하게 진행됐다. 시민들은‘국가가 구하지 못한 304명’을 추모하기 위해 묵념으로 집회를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과 희생자 유족, 세월호 관련 지원활동을 계속해 온 시민 발언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유가족들의 지난 1,000일을 함께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제발 부탁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라고 절규하듯 외치며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던 유족들의 모습이 영상에 나오자 광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딸의 시신조차 품에 안아보지 못한 단원고 다윤이 아버지 허흥환씨는 “지금은 바다에 가라 앉은 세월호를 딱히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다시 3월이 돼 새로운 선체 인양을 시작하는데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며 “9명이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집회가 끝나고 다시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 세월호 선체 인양을 기다리겠다는 그에게 시민들은 함성과 박수로 힘을 보탰다.
단원고 생존학생들도 용기를 냈다. 친구 8명과 함께 무대에 오른 장애진(20)양은 “시민들 덕분에 제대로 된 진상규명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7시간을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양은“우리는 참사 당일 대통령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라며 “제대로 (구조) 지시를 했거나, 당장 (배에서) 나오라는 말만 해줬다면 지금처럼 희생자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제대로 지시하지 못한 7시간을 조사하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로 생을 달리한 친구들에게 “우리는 너희들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할게. 우리가 너희를 만나는 날 18살 그 모습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생존학생들은 발언을 마무리했다.
이들의 발언을 듣고 있던 대학생 강원석(23)씨는 “생존 학생들을 유가족이 안아줄 때 가장 슬펐다. 광화문 집회에 나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며 “그 동안 관심을 갖지 못해 미안했던 만큼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7시 일제히 촛불을 끄는 소등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의혹에 대한 진실규명 촉구 차원이었다. 불이 꺼지자 주최 측은 “바닷속은 소등한 이곳처럼 어둡다. 이 어둠 속에 9명의 미수습자가 여전히 있다”며 미수습자들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며,“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오라”는 외침과 함께 1,000개의 노란 풍선을 하늘로 띄워 보냈다.
참가자들은 본집회 이후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방면 3개 방향으로 행진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분향소 사진이 들어간 현수막과 단원고 학생들이 1학년 때 찍은 단체사진을 앞세우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정치인들도 유가족들과 함께 희생자들의 사진이 그려진 플래카드를 들었다.
행진하던 시민들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집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에 잠시 멈춰‘황교안은 퇴진하라’는 구호가 적힌 노란 종이비행기 300개를 날렸다. 11차례에 걸친 촛불집회에 모두 참여했다는 신동협(51)씨는 “1,000일 동안 세월호 진상규명은 아예 안 됐다고 봐야 한다”며 “경제순위 10위에 오른 나라가 국민 안전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창피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 인근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앞에 모인 시민들은 ‘촛불 헌법 재판소’ 이름으로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인용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주최측은 “오늘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박 대통령을 먼저 탄핵하니 헌재도 조속한 시일 내에 절차를 거쳐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길 바란다”고 가상의 판결문을 낭독했다. 행진을 마친 시민들은 다시 광화문 광장에 모여 정리집회를 진행한 뒤 촛불집회를 마무리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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