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금 받기 힘든 작품들
새로운 재원 마련 창구로 각광
프로젝트 수ㆍ후원금 규모 등
전반적 지표 2배 이상 성장
지난해 공연계에서 화제를 모았던 연극 프로젝트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검열각하)는 기획 단계부터 남달랐다. 기획 취지에 맞게 정부기관 지원금을 과감히 거부했다. 한 푼이 아쉬운 연극계의 실태를 감안하면 파격이었다. ‘검열각하’는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통해 후원금을 모았다.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약 두 달 동안 337명이 후원에 참여했고, 모인 돈은 4,507만원으로 목표 금액(4,300만원)을 뛰어넘었다. 덕분에 30~40대 연출가들을 주축으로 하는 20개 극단의 21개 작품이 6월부터 10월까지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문화계에서 크라우드펀딩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영화나 대중음악 등 상업성 강한 분야를 넘어 인지도가 떨어지기 마련인 연극과 전시 분야 등까지 적용 범위가 넓어지며 새로운 재원 마련 창구로 떠오르고 있다. 공적 지원금의 규모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 하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드러났듯 지원 기관의 입맛에 따라 특정 인물을 배제하거나 일부에게 특혜를 몰아주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 속에서 문화계 활성화의 대안으로 각광받을 조짐이다.
‘대중(Crowd)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Funding)’는 의미의 크라우드펀딩은 정부로부터 외면 받은 작품을 구제하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강한 전위성이나 비상업성 때문에 기획조차 엄두내기 힘든 수준 높은 작품들에게 제작의 기회를 제공하며 예술의 다양성 확대에 적극 기여하고 있다.
문화계 크라우드펀딩을 이끄는 주요 업체는 텀블벅과 다음스토리펀딩, 굿펀딩 등이 꼽히는데, 기본적인 운영방식은 비슷하다. 제작자가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후원금 목표액을 페이지에 올리면 일정 기간 동안 그 취지에 공감하는 익명의 다수가 후원하는 형태다. 영화계에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26년’(2012), 제주 4ㆍ3사건을 다룬 ‘지슬’(2013) 등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일부 자금 조달에 성공한 뒤 보편적인 제작비 마련 방법으로 정착했다.
텀블벅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사업 개시이래 무용ㆍ연극ㆍ뮤지컬ㆍ페스티벌 등으로 구성된 ‘공연’ 범주에 올라온 프로젝트는 3일 기준 350여개로 이중 약 3분의 2가 목표 후원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들 프로젝트의 누적 후원액은 약 7억7,000만원이다. 미술전시ㆍ공공예술ㆍ행위예술 등으로 구성된 ‘미술’의 경우 475개의 전체 프로젝트 중 반 이상이 목표금액을 달성했고 누적 후원액은 12억4,000만원이다.
다음스토리펀딩의 경우 전체 932개의 프로젝트(7일 기준) 중 ‘아트’ 범주에 올라온 프로젝트는 전체의 20%인 173개다.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위안부 소녀상을 촬영해 전시한 ‘소녀의 여행을 응원해주세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를 위해 제작된 ‘메모리얼 벤치’ 등이 다음스토리펀딩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크라우드펀딩은 형태에 따라 지분형, 대출형, 후원형으로 분류되는데 창작활동에 대한 지원은 대개 지분 취득이나 투자금 회수를 전제하지 않는 후원형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데도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 후원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후원자들은 후원금액에 따라 초대권이나 관련 제품 등을 선물로 받는다. 이들은 물적 보상보다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에서 보람을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지원금을 받기 어려운 민감한 주제의 작품에 유독 많은 지지를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ㆍ운성 작가의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는 총 9,003명의 후원자로부터 목표액의 266%인 2억6,600만원의 후원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는 텀블벅 최다 인원ㆍ최대 후원 기록이다. 작가는 제작비를 제외한 후원금 전액을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할 것이라 약속했다. 인권운동가 고상만씨가 군 의문사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을 목표로 기획한 연극 ‘이등병의 엄마’(5월 중순 개막)는 7일 기준으로 1,680건의 후원이 접수됐고 목표금액 7,000만원의 63%인 4,400만원을 모으는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는 “2015년과 비교해 지난해 프로젝트 개시 수, 후원금 규모 등 전반적인 지표가 2배 이상 성장했다”며 “특히 후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3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