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문재인, 패권주의 해소 위해 나서야” 포문 열어
친노, 文ㆍ安으로 분화… 대선 가도서 피할 수 없는 대결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 레이스에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떠올랐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그간 비판을 자제했던 선두 주자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하면서다. ‘노무현’이라는 동일한 정치적 뿌리를 가진 양측의 경쟁은 당내 경선에서 어차피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다만 민주당 지지층의 다수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 결과에 따라 당심(黨心)이 출렁거릴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패권주의’ 거론하며 포문 연 안희정
안 지사는 9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당내 친문 패권주의가 존재한다는 지적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당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인 문 전 대표에게 문제 의식과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며 “그런 점에서 문 전 대표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같이 나서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 측이 금기시하는 ‘당내 패권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경쟁의 포문을 연 것이다. 22일 대선 출마선언을 앞둔 안 지사는 향후에도 친문 패권주의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며 문 전 대표와 차별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자(嫡子)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지만 양측은 일단 톤을 낮췄다. 안 지사 측 대변인인 박수현 전 의원은 “국민들도 인식하고 있는 당내 패권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두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새 시대의 지도자로서 누가 더 적합한지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 측 대변인격인 김경수 의원도 “안 지사의 문제 제기는 ‘개헌 문건’으로 비롯된 당내 논란을 문 전 대표가 나서서 해결하길 바란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번 대선을 노 전 대통령의 적자 경쟁 구도로 바라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었다.
부산팀ㆍ금강팀이 양측의 뿌리
양측의 주장대로 노무현 정신의 계승과 발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정치세력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에는 일치한다. 문 전 대표는 지난주 검찰ㆍ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개혁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10일 재벌개혁 방안을 발표한다. 이어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국토균형발전 등의 실현을 위해 지방분권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안 지사도 이날 청와대ㆍ대법원ㆍ대검찰청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공약을 밝혔고, 앞서 강원평화선언으로 남북관계 개선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정치권에서 불가피한 일전이라는 평가다. 친노 진영에서도 차기 대선을 앞두고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그룹과 안 지사를 지지하는 그룹으로 분화했기 때문이다.
양측 캠프의 인사들은 통칭 ‘친노’로 불리지만, 연원을 달리한다.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 1980년대부터 인연이 시작된 ‘부산팀’의 좌장이었고, 안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을 대권 도전으로 이끈 ‘금강팀’에 속했기 때문이다.
부산팀은 노 전 대통령이 1980~1990년대 부산에서 변호사 활동과 국회의원(13대ㆍ부산 동구)을 지내면서 인연을 맺은 인사들이 주축이다. 노 전 대통령의 정계 입문 전에 법무법인 부산을 함께 운영했던 문 전 대표를 포함해, 당시 보좌관을 지냈던 이호철, 비서관을 지냈던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 3인방’ 정윤재ㆍ최인호ㆍ송인배 등이다. 이들은 대선 직전 선거운동에 참여해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에 입성했다.
안 지사는 지난 2002년 ‘친노 1세대’로 불리는 염동연 전 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이광재 전 강원지사, 백원우ㆍ서갑원 전 의원 등과 함께 금강팀에 속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대선 경선의 베이스캠프였던 지방자치실무연구원 및 자치경영연구원이라는 조직이었으나, 여의도 금강빌딩에 입주해 ‘금강팀’으로 불렸다. 이들은 당내 경선 때부터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으나, 참여정부 초기 나라종금 사건으로 염 전 의원과 안 지사가 검찰 조사를 받는 등 시련을 겪었다.
‘본선 확장성’ 에 따른 엇갈린 전망
더구나 양측은 상대방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어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문 전 대표 측은 ‘가장 준비된 후보’임을 강조한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석패한 이후 당 대표를 역임했고, 대선후보로서 안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야권의 유일한 후보라는 점에서다. 학계 인사 800여 명이 참여하는 ‘정책공간 국민성장’을 통해 정책을 준비하고, 열성 지지자들의 팬덤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안 지사 측은 객관적인 수치에선 열세임을 인정한다. 다만 “문 전 대표가 양극화 등으로 인한 사회통합의 적임자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문 전 대표가 당 대표를 역임했을 당시 분당된 사례를 거론, “야권 분열을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본선 확장성’ 논란으로 이어진다. 안 지사 측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당내 비문인사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며 “대선의 캐스팅보트인 중도세력을 끌어안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안 지사는 야권의 불모지였던 충남에서 재선을 일궜고, 중도보수층에서 비호감도가 높은 문 전 대표에 비해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은 행보를 한 것이 장점이다. 다만 안 지사가 대선 본선에 나서려면 당내에서 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과제다.
물론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의 경쟁이 험악한 결론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당내 경선 과정에선 문 전 대표와 각을 세우는 게 표를 결집하는 효과가 적지 않다”며 “양측이 이념적ㆍ정책적 차이가 뚜렷하거나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정도의 과열 경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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