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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칼럼] 시어머니를 보내며

입력
2017.01.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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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모시고 살던 시어머니의 사십구재를 치른 날부터 감기기운이 있더니 밤중에 열이 나고 목이 심하게 아파 감기 시럽이라고 생각한 약을 조금 마셨다. 마시고 보니 약간 이상해 자세히 보니 “삼키지 마세요” 라고 쓴 가글이었다. 약품성분과 관련된 논문들을 인터넷으로 살짝 보니, 신장, 신경 독성 등 엄청난 단어들만 눈에 띈다. 협심증 약까지 먹고 있는 터라, 주관적 증상은 심하지 않지만 119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마침 간호사인듯한 젊은 여성이 친절하게 “어머님, 그 정도 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 물 많이 드시고, 안정 취하면 괜찮아집니다” 하고 안심시켜 주었다.

아마도 글을 잘 못 읽거나, 치매 증상이 살짝 온 할머니쯤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전화를 끊고 보니 “내가 의사,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글이었으니 망정이지, 세정제 같은 약을 실수로 먹었다면 죽을 수도 있는 순간이 아닌가. 다음날 아침엔, 내 휴대전화에는 119에서 응급 전화를 받은 후 위치추적 장치가 발동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내 낡은 의학지식보다 환자들을 배려하는 국가의 시스템이 백배 나은 셈이다.

부끄러운 에피소드였지만,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노년의 생애주기로 진입했고, 어쩌면 죽음이 아주 멀리만 있지 않다는 일종의 경고등으로 읽혔다. 하필이면 사십구재가 끝난 날부터 아프기 시작했고, 이름 모를 젊은이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시어머니 살아 계신 동안, 365일 밥상을 차려 드렸지만, 맛있다, 수고했다, 미안하다 란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없다.

나도 어머니이잉, 하며 애교 부리지 못하는 뚱한 며느리였으니, 14대 15대 종부의 성품이라 치고 살았어도, 서운한 마음이 아주 없진 않았다. 돌아가시기 전 2년 간, 온 몸이 마비가 되어 마루에 누워계시게 되어 간병인이 있었으나, 아무래도 아들이나 손자보다는 여자인 내 손길이 어머니에게 필요했다. 시누이들의 거의 강제하다시피 한 조언 때문인지 고맙다는 말씀을 딱 두 번인가 하셨는데, 그저 어색하기만 했다.

20년 전 시아버지도 거의 비슷한 상태로 일년 넘게 마루에서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에는 똥 묻은 이불이나 옷 빨래만 내 차지였지, 어머님과 남편이 주로 병수발을 했기에 마음이 또 달랐다. 그 때는 간병인을 쓸 수 없었고 변기, 휠체어 같은 것도 매우 비쌌지만, 이번에는 필요한 물품들을 매우 싼 값에 빌려 쓰거나 살 수 있어서, 복지가 엄청나게 좋아졌다는 것도 체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다가 어머니의 토사물을 치워야 한다든가, 변기나 기저귀를 갈아야 될 때 등등, 마음을 닦아야 될 지점도 적지 않았다. 아버님 상을 치를 때에 비해, 30여 년 동안 정이 들어 그런지, 시댁 식구들이 진심으로 우리 부부를 여러 모로 도와주고, 합심해 힘든 일을 해 주어 감사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깊이 감사할 일은 착하고 유능한 박향경씨란 간병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요양사 자격을 딴 후 십여 년 병원에서 일하다 우리 집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내가 한 음식을 정말로 맛있게 먹으면서 내게 요리도 배우려 하고, 다림질 같은 살림도 잘 따라 해주어 마치 딸이나 여동생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어 아주 큰 힘이 되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과정을 차례로 지켜보았으니, 아무래도 다음 차례인 남편과 내 죽음은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소원이 있다면, 남편보다 일찍 죽어서 아들 며느리 도움을 안 받았으면 하는 것이다. 혼자 남은 남편에게 살짝 미안한 노릇이긴 해서 혹시 여자가 생기면 동거는 얼마든지 환영이라고 말해 주기도 했다(재혼은 아들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 점은 잘 모르겠다).

물론 남편이 지치지 않고 얼마나 나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킬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자기 부모에게 한 것 반만 해 주어도 만족하고 감사해 할 것 같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가족들에게 폐를 끼쳐야 하는 상황이 오면 안락사를 택하고 싶다. 종교적으로 큰 죄라 한다 해도 내 마음이 그렇다.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는 안락사를 허용한다 하니, 어쩌면 그 나라에서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간병서비스가 잘 되어도, 죽음의 과정은 집이건, 병원이건, 본인과 주변 사람 모두 힘들고 어렵다.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기 싫다고 말할 때면, 그럼 어떻게 누구로부터 간호를 받을지 당신은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는지, 그 죽음의 과정에 느끼는 고통과 자괴감 같은 것을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지 속으로 묻게 된다. 이렇게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과연 죽음이 아주 가까이 찾아 올 때 얼마나 의연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아직 마음 공부, 몸 공부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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