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회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김승용
“우리 속담에 대한 해설이라 아이들에게 꼭 읽혔으면 하는데, 아이들을 위한 책을 따로 내실 생각은 없나요?” ‘한국일보 20년 독자’라는, 희끗한 머리의 중년 여성이 질문했다.
또박또박 강연을 이어갔던 ‘우리말 절대지식’(동아시아)의 저자 김승용씨의 대답이 조금 빨라졌다. “사실 아이들 때문에 이 책을 썼습니다. 아이들 그림책 같은 걸 보면 엉터리가 너무 많아요. 가령 ‘독장수 구구는 독만 깨뜨린다’는 속담이 있어요. 아이들 책엔 독 지게 새워놓고 부자될 꿈에 좋아서 허우적대다 지게 받침대를 쳐서 독이 다 깨진다고 설명해둬요. 이거 아니거든요.”
김씨 얘기에 청중석은 일순 조용해졌다. 그럼 뭘까.
김씨는 손가락을 펴들고 ‘구구’ 시범을 보였다. 6 곱하기 8의 경우, 손가락을 접어나가다 다시 펴는 방식으로 한 손은 6, 다른 손은 8을 센다. 펴진 손가락 수를 더하고, 접힌 손가락 수를 곱하면 4와 8, 곧 48이 나온다. 이게 ‘구구’다. 흔히 쓰는 ‘주먹구구’도 여기서 나왔다. 이 주먹구구에 정신이 팔려 걸어가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진다는 게 속담이 설정한 원래 상황이다.
김씨는 “근본을 따져서 이해하지 못하니, 대충 비슷해 보이는 엉뚱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이를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시대에 속담은 널리고 널렸다. 인터넷엔 거의 모든 속담이 있다. 학교가 속담 조사를 숙제로 내주면, 아이들은 이걸 고스란히 베껴간다. 그러나 인터넷상 설명을 들여다보면 ‘Ctrl+C, Ctrl+V’(복붙ㆍ복사해서 붙이기) 수준이다.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아무도 모를 정보만 무한정 부풀려지는 것이다.
11일 서울 내수동 교보문고ㆍ핫트랙스의 복합문화공간 워켄드 아크홀에서 열린 제57회 한국출판문화상 릴레이 북콘서트 첫 시간. 저술(교양) 부문 수상자로 강연에 나선 김씨의 답변에는 막힘이 없었다. 속담을 쫓다 보니 그 속에 담긴 우리 문화와 동식물을 추적해야 했다. 그 때문에 9년간 500여권의 책을 읽고 4,000여편의 다큐멘터리를 봐가면서 책 한 권에만 매달렸다.
김씨는 속담 공부가 절대 옛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헌신하면 헌 신짝 된다’처럼 인터넷에 나도는 ‘박명수 어록’을 들었다. “리듬감도 있고, 댓구에다 말장난까지 있어요. 거기에다 결정적으로 ‘삶’이 담겨져 있지요. 이런 게 현대의 속담입니다.”
그래서 속담은 해방감을 준다. 프리랜서 출판인인 김씨는 “속담 속에 담긴 삶을 읽어내면서 내 삶의 태도가 바뀌었고, 그 때문에 속담은 나만의 자기계발서가 되었다”며 웃었다.
다음 북콘서트는 1주일 뒤인 18일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저술(학술) 부문 수상작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동아시아)의 저자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영화 ‘인터스텔라’로 널리 알려진 중력파 연구를 소개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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