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으로 反이민ㆍ보호무역주의
극단적 지도자 등장 원인 제공한
기존 글로벌 리더십 비판 쏟아질 듯
슈바프 회장 “포퓰리즘 남발 경계”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 혜안 부심
<편집자 주> 2017 다보스포럼에 참석 중인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은 앞으로 3회에 걸쳐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김영훈 회장의 다보스 레터’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올해로 14번째 참석하는 세계경제포럼(WEFㆍ다보스포럼)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해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핵심 주제였다면 올해 키워드는‘소통과 책임의 리더십(Responsive and Responsible Leadership)’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국내 정치 상황을 놓고 볼 때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다보스포럼에서 불평등과 불균형 문제, 이를 해결할 비전을 제시할 ‘리더십’을 전면에 들고 나온 것은 일견 아이러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끊임없는 수정과 자기혁신을 통해 발전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모순이 아니라 또 다른 자기 혁신에 대한 필연적인 요구로 느껴진다.
포럼 개막 직전 만난 클라우스 슈바프 WEF 창립자 겸 회장은 나에게 이번 포럼 주제에 대해 명쾌히 설명했다. 슈바프 회장은“책임지지 않는 리더들이 대중인기에 영합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철저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며“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 사람, 책임있는 리더십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장기간에 걸친 경기침체나 재앙적인 경제위기는 정치적 격변의 원인이 되곤 했다. 글로벌 경제는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침체에 침체를 거듭하고 있고, 저성장의 고착화가 ‘뉴 노멀’로 자리잡았다. 지금의 글로벌 리더십 위기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급속한 세계화와 기술발전으로 급속한 경제환경 변화에 따른 부의 불평등한 분배, 기후변화와 에너지 시장의 변화, 중동지역 정치불안과 이에 따른 대량 난민사태 등 복잡한 글로벌 이슈들의 역동성이 리더십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자유시장과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자부하던 미국과 서유럽에서 정치적으론 인종차별적 반(反) 이민 정책, 경제적으론 자본과 무역의 보호주의를 기치로 내건 극우 정치세력이 잇따라 득세하면서 관용과 개방을 기조로 한 글로벌 정치ㆍ경제 시스템이 위기를 맞고 있다.
1930년대 히틀러와 무솔리니 등 두 패권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의 지도자들이 결탁해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경험한 유럽 지식인들이 최근 북미와 서유럽에서 극우정치 세력의 대 약진을 우려스럽게 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올해로 42회째인 다보스포럼에선 수많은 현안에 대해 적절한 비전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극단적 성향의 정치지도자의 등장 원인을 제공한 기존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다보스포럼 특성상 한 국가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글로벌 리더십 또는 글로벌 지배구조(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할 지에 대한 혜안 찾기에 더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글로벌 거버넌스 부재에 대한 비판이 넘쳐 나겠지만, 그나마 희망적인 대목은 인류 생존과 직결된 기후변화문제에 대응키 위해 2015년 200여 국이 참가한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대한 합의가 이미 성사됐고, 국가별로 발 빠르게 비준이 진행돼 지난해 말 정식으로 발효가 됐다는 점이다. 올해는 각 국가별로 제출한 자발적 감축목표를 넘어 2도 목표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시점에서 2도 상승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테러의 확산, 제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기술발전과 산업환경 변화가 가져올 미래, 이로 인한 고용불안정과 부의 편중 등 부작용, 중국의 성장률 둔화에 따른 세계경제의 위축, 인구의 고령화, 사이버 보안 등 단골 메뉴들도 주요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다보스포럼의 최대 장점은 세계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이 개인적 이익이나, 소속된 단체나 국가의 이익을 접어놓고 글로벌한 시각에서 이슈를 바라보고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는 점이다. 결코 성급하게 결론을 도출하거나 합의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다보스포럼을 ‘말의 성찬’이라고 하지만, 최소한 세계가 글로벌 이슈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세계경제 흐름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지 미리 내다 볼 수 있는 ‘열린 창’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다보스(스위스)=김영훈 세계에너지협의회 (World Energy Council)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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