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로비에 들어서면 저절로 위압감이 들고 뭔지 모를 권위에 억눌리는 느낌이다.” 한 전임 대통령 전속 사진사는 청와대라는 공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통령의 업무공간은 높은 천장, 붉은 카펫이 주는 고압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경호와 통제로 인한 긴장감이 상존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압감을 사진으로나마 느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최근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면서 청와대 내부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중요 국가 안보시설’이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국민에겐 여전히 ‘비밀의 공간’이다. 도대체 청와대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본관
대통령 일정을 다양한 구도로 기록한 청와대사진기자단의 사진을 살펴보면 청와대 본관은 업무와 소통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 의전만을 위한 건축물에 더 가깝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감히 오를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웅장한 중앙계단이 눈에 들어오고, 붉은 카펫이 깔린 긴 복도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황량할 정도다. 널찍한 회의실과 높은 천장, 곳곳에 드러난 빈 공간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한 느낌을 준다.
필요 이상으로 공간이 넓다 보니 수석비서관회의와 같은 소규모 회의에서조차 ‘1인 1마이크’가 필수다. 의자와 의자 사이 간격이 멀고 목소리는 드넓은 허공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10~20명 규모의 회의라도 마이크 없이는 진행이 불가능하다. 반면에 백악관의 경우 우리 국무회의 격인 캐비닛 미팅(Cabinet meeting)을 비롯해 거의 모든 회의에서 마이크를 찾아보기 어렵다.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설치된 마이크는 역설적으로 자유롭고 즉각적인 의견 개진을 어렵게 한다. 발언 전 마이크를 켜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순발력 있게 의견을 말하거나 참석자끼리 토론과 언쟁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 과거 청와대 관계자는 “회의장이 아니라 발표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하게 넓은 공간과 더불어 격식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문화로 인해 대통령과 주변 사람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져 있다. 여기에 즉흥 연설을 꺼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이 더해져 우스꽝스러운 상황도 벌어진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진 중에는 10여명 정도 참석한 소규모 회동인데도 대통령이 테이블에서 3~4m 떨어진 연설대 앞에 서서 인사말을 읽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참석자들이 느끼는 대통령과의 심리적 거리가 사진 상에 나타난 것보다 가까울 수 있을까.
미국 백악관은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 가족의 관저 생활을 유튜브에 공개한 데 이어 360도 VR(Virtual Reality) 영상으로도 백악관 내부 곳곳을 소개했다. 영상 속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은 국민의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집무실마저 공개를 꺼리다 보니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국민들이 접하기는 더욱 어렵다. 박 대통령의 경우 취임 직후 참모진들과 기념촬영을 하거나 통화 장면 연출, 청년희망펀드 공약신탁 가입 서명 때에만 집무실을 살짝 공개했다. 집무실에서 각종 임명장 수여식을 소화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참모진과의 회의 또는 TV로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는 모습을 공개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도 비교된다.
#관저
대통령 관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얼마 전 헌재 탄핵심판에서 박 대통령 측은 세월호 참사 당시 관저 내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관저 내부의 구조나 대통령의 동선은 국가 기밀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대통령과 가족이 거주하는 관저는 청와대 내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관저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임 대통령의 경우 드물지만 관저 내에서의 일정을 언론에 공개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기각된 2004년 5월 14일 고건 당시 국무총리를 관저로 초청해 만찬회동을 가졌고 2008년 2월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관저에서 만났다. 임기를 마치고 관저를 떠나며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도 언론에 공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영부인, 손주들과 함께 다정하게 송편을 빚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관저 내부 구조를 개방적으로 바꾸고 관저에서의 공식 일정을 늘릴 것을 권유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과거보다 폐쇄적인 관저에서 비선실세나 보안손님을 만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결국 대통령이 탄핵심판대에 서면서 ‘소통은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말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겹겹이 둘러쳐진 불통의 벽으로 스스로를 격리해 온 대통령은 ‘구중궁궐’에 홀로 앉아 멀어져 간 민심을 아쉬워하는 처지가 됐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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