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우리말 톺아보기] ‘개이득’과 ‘개 좋아’

입력
2017.01.19 10:30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국어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접두사 ‘개-’의 뜻은 ‘야생의,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 헛된, 쓸데없는, 정도가 심한’이다. 그러니 ‘개-’가 붙은 낱말을 좋은 뜻으로 쓰기는 어렵다. ‘개살구’나 ‘개떡’처럼 사물을 가리키는 말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언짢은 것’을 비유하는 말로 더 흔히 쓰이는 게 현실이다.

‘개이득’이라는 생소한 낱말을 접했을 때, 나는 이 말이 ‘개꿈’처럼 ‘헛된’을 뜻하는 ‘개-’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개이득’이 ‘큰 이득’임을 알고는 혼란스러웠지만, 이 말이 ‘개고생’처럼 ‘정도가 심한’을 뜻하는 ‘개-’가 붙어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개이득’과 ‘개고생’의 ‘개-’는 ‘일상의 정도가 넘어선’이란 의미를 공유하고 있으니까. 물론 부정적으로 쓰이던 ‘개-’가 긍정적인 뜻까지 포괄하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이 또한 익숙해질 것이다. 접두사 ‘왕(王)-’은 ‘매우 큰’의 뜻으로 ‘왕소금’, ‘왕만두’ 등에 쓰이는 한편, ‘매우 심한’의 뜻으로 ‘왕고집’, ‘왕짜증’ 등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그러나 명사에 붙을 접두사가 ‘개 좋다, 개 급하다, 개 맛있다’ 등처럼 쓰인 표현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개고생’이 ‘개고생하다’로 쓰이는 현상과 대비하면, ‘개 힘들다’가 만들어진 정황은 짐작할 수 있다. ‘정도가 심한/매우 큰’이란 뜻의 접두사 ‘개-’가 서술어와 호응하면서 ‘매우, 무척’이란 뜻의 부사로 변한 것이다. ‘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말의 파괴일까? 언어 변화 이론에서는 낱말이 접사로 바뀌는 변화를 문법화로, 접사가 낱말로 바뀌는 변화는 어휘화로 설명한다. 파괴보다는 변화로 보는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