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공전하던 별 / 무던히도 차갑고 무심하게 / 널 밀어내며 돌던 별 / 너는 엄마와 같은 우주 / 무한한 중력으로 날 / 끌어안아 주었지 / 네 마지막 신호 / 불안하게 / 뒤섞여 끊어지던 파동의 끝자락”
18일 오후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릴레이 북 콘서트가 열린 서울 내수동 경희궁의아침 4단지 워켄드 아크홀.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동아시아)로 저술(학술) 상을 수상한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가수 이승환이 지난해 초 발표한 노래 ‘10억 광년의 신호’를 들려줬다. 언뜻 들어선 20대 취향의 손발 오글거리는 사랑타령 노래 같은데, 실제로는 ‘중력파 노래’라는 오 연구원의 너스레에 청중들은 ‘빵’ 터졌다.
설명을 들어보니 그렇다. 이론적으로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예언한 뒤 지난해 2월 실제 검출돼 과학계를 흥분시킨 중력파는 12억년 전 서로 맞돌던 쌍성(雙星)이 충돌할 때 방출된 것이다. 그마저도 ‘10의 -21승’이란 너무 미약한 크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짹짹 소리’(chirp)라 부르는, 짧은 반향 한 번 내보일 뿐인 힘이다. 그 힘이 방출될 당시 지구는 선캄브리아기, 그러니까 대기 중에 산소라는 게 막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12억년 뒤 중력파와 지구의 만남은 그때 예약됐다. 이만하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는 둥, 손발 오글대는 사랑타령 나올 만하지 않은가.
수 만년, 수 십 억년의 시공간을 건너 다니는 우주적 스케일은 모든 이야기를 기묘하게 만든다. 이 기묘함을 없애기 위해 오 연구원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비유를 섞어가며 중력파 검출에 왜 과학계가 흥분하는지, 지금 세계 각국이 어떤 후속 연구 작업을 준비 중인지, 한국에서 진행하려는 소그로(SOGRO) 연구는 무엇인지 차분히 짚어나갔다.
천체물리학의 최전선인 만큼 어려운 주제였음에도 청중들이 호기심 어린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중력파 연구로 인해 달라질 미래상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다. 공상과학물 ‘스타트렉’에서 보는 워프항법, 영화 ‘인터스텔라’가 살짝 보여준 중력 문명의 가능성,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과 천송이를 재회하게 해준 웜홀 등이다.
오 연구원은 19세기말 전자기파를 입증한 하인리히 헤르츠의 일화를 들었다. 제자들은 헤르츠에게 이 발견으로 무얼 할 수 있을 지 물었다. 헤르츠가 고심 끝에 내놓은 답은 “단지 맥스웰의 이론을 증명했을 뿐,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였다. 그러나 인류는 그 후 100년간 전자기파로 라디오, TV, 전자레인지, 핸드폰, 레이더 같은 것을 만들었다. 오 연구원은 “이제 검출에 성공한 단계에서 중력파로 무얼 할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헤르츠의 답변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며 “그러나 이번 중력파 검출 작업에서 의외의 성과는 중력파가 측정이 힘들어서 그렇지 기대 이상으로 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력파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지속적으로 쌓여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으로선 상상력의 영역일 수 밖에 없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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