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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깨서 울고 대화 거부… “영어 유치원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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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깨서 울고 대화 거부… “영어 유치원 싫어요”

입력
2017.01.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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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치 교재 37권 달하고

미국 노동절 등 생소한 내용

코딩 가르치는 곳까지 생겨

영어 교육열 등에 업고

교과 수준 경쟁적으로 높여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에

소아정신과 찾는 사례도

경기 화성시에 사는 일곱 살 김모양은 유아 영어학원(영어 유치원)을 다닌 지 6개월여 만에 ‘선택적 함구증’ 진단을 받았다. 집에서는 부모와는 곧잘 대화하면서도 유치원이나 낯선 곳에만 가면 입을 닫고 대화를 일체 거부하는 것이다. 놀란 김양의 부모가 일반유치원으로 다시 옮겼지만 함구증은 계속 이어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경기 용인의 유모(6)군은 1년 전부터 오전엔 일반 어린이집, 오후에는 영어 유치원을 다닌다. 이른바 ‘두 탕 수업’이다. 일반 어린이집만 다닐 때는 별 문제가 없던 유군은 영어 유치원이 추가되면서부터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밤에 자다 깨서 “영어를 배우기 싫다”며 울부짖는 등 반항 증상까지 보여 결국 소아 정신과를 찾아야 했다.

극심한 영어 학습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미취학 아동들이 급기야 정신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부모들의 영어 교육열을 등에 업고 영어 유치원들이 경쟁적으로 교과 수준을 대폭 높여 잡고 있는 탓이다. 이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어지간한 중ㆍ고교생을 방불케 하는 학업 부담을 떠안는 실정이다.

19일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따르면 우리나라 영어 유치원은 2015년 말 현재 전국 339개로, 영어 유치원에서 하루 4시간 이상 수업을 듣는 어린이는 2만209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교습 시간은 4시간 57분. 보통 오전 9시~9시30분에 시작해서 오후 2시~2시30분 정도까지 이어진다. 정규 수업과 별도로 2, 3시간짜리 ‘방과 후 특별활동’을 진행하는 영어 유치원도 적지 않다. 하루 8시간 가량 수업을 하는 학원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교과 수준도 경쟁적으로 높아진다. 서울에 여러 곳 직영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영어 유치원 P어학원의 경우 1년치 수업 교재 분량이 영어 동화 읽기, 영문법, 단어, 실전 회화 등 모두 37권에 달한다. 이 책들의 페이지 수는 무려 4,257쪽이다. 취학 아동들도 감당하기 버거운 분량이다. 일부 교재는 특히 미국 노동절, 추수 감사절, 멕시코 전통 놀이 등 어린이들에게 지나치게 생소한 내용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교과목에 다양한 전문 과정을 넣는 영어 유치원도 늘고 있다. 역시 미취학 아동 대상의 E어학원은 최근 교과목에 ‘영어 코딩’을 넣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을 100% 영어로 진행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영어 유치원의 경우 학업 스트레스가 일반 유치원보다 훨씬 클 수 있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 말조차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영어를 주입식으로 교육할 경우 정서 발달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연정 순천향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평균 만 6세가 돼야 학습 인지기능이 형성되는데 그 전에 너무 무리한 학습을 강요할 경우 학습 호기심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면서 “유아기에는 신체, 정서, 사회성 등 기본 생활 습관과 바른 인성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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