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5대 대통령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 일성은 역시 ‘미국 우선주의’였다. 그가 주장하는 잘못된 무역관행과 시혜적 동맹체제를 뜯어고쳐 심각히 훼손된 미국의 국익을 되찾겠다는 게 취임사의 요지다. ‘미국이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닌 ‘세계가 미국에 해야 하는 것’을 요구하는 인식이 곳곳에 배어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에 시비를 걸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상대적 쇠락을 외부 탓으로 돌리며 화합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야 할 취임사에 분열의 감정만 부각했으니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언론과 주요국 반응도 다르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자유나 정의, 평화와 같은 단어들이 빠진 취임사는 “분명한 실망”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품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충격적일 정도로 역사에 무관심한 비전을 드러냈다”고 혹평했다. 독일 등 주요 우방국 역시 의례적 환영을 뺀 채 “트럼프의 연설을 연구할 것”이라고 유보적 자세를 보였다.
취임사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세계관은 우리에게는 큰 도전이다. 그는 “외국의 산업을 풍요롭게 하는 대가로 미국의 산업이 희생됐으며 수 조 달러를 해외에 쓰는 동안 미국의 인프라는 망가졌다”고 했다.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세계 무역질서가 미국에 일방적 희생을 안겼다는 인식을 확인한 것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기존 경제질서의 대대적 변화를 예고했다. 그가 두 가지 규칙이라고 언급한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은 중국 등 신흥 경제대국이 더는 세계 경제질서를 좌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세계 각국이 미국의 자국우선 경제질서에 맞서 보호무역으로 대응할 경우 수십 년 지속된 자유무역 체제에 커다란 격변이 예상된다. 그의 취임에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반응을 보이는 것부터 개방과 무역에 의존해 온 우리 경제에는 직접적 도전이다.
무엇보다 동맹관계 재조정과 대 중국 압박을 기조로 한 외교ㆍ안보 정책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다른 나라의 군대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우리 군대는 고갈되도록 했다”며 후보 시절의 동맹국 ‘안보무임 승차론’을 재론했다. 동맹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동맹국에 보다 많은 안보비용을 전가하겠다는 것은 동맹을 기반으로 한 세계 안보지형의 근간을 흔드는 불씨다. 특히 북핵과 중국의 팽창주의가 맞물려 혼미한 동북아 안보정세에 비추어 미국의 이른바 ‘상호주의’ 동맹관계가 주변국의 재무장이나 군비강화의 빌미가 될까 우려된다.
북핵 문제를 포함해 휘발성 짙은 동북아 정세의 시급함을 트럼프 정부가 직시해 힘의 공백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급선무다. 새로운 한미동맹도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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