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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쇼핑왕 루이

입력
2017.01.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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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852년 프랑스 파리에 봉 마르셰 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봉 마르셰는 물건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만들어냈다. 박리다매로 가능해진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눈이 아찔해지는 경이로운 디스플레이로. 백화점은 스스로를 상층 중간계급이라고 믿고 싶은 이들을 파고들었다. 상층 중간계급의 이상적 생활을 일상에서 실현하려면 이런 가구와 식기를 사야 하고, 저런 캐주얼웨어를 입어야 하고, 당장 바캉스용품을 사서 휴가를 떠나야 한다는 식으로 중산층 소비자들에게 라이프 스타일을 교육시켰다.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는 당시 백화점을 연구해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썼다. 졸라는 쇼핑에 빠져 사는 아내를 따라 6개월 간 백화점을 다니면서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정리했다. 백화점이 물건을 진열하는 방식과 고객을 응대하는 방법,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내세우는 마케팅 계획까지 꼼꼼하게 담았다. 졸라의 눈에 비친 백화점은 소비의 성전이었다. 고딕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닮은 백화점의 중앙 유리천장을 관통하는 빛이 상품의 표면 위로 쏟아지면서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미끼상품과 바겐세일을 발명하고 라이프스타일 교육으로 국민을 소비자로 만들어 위대한 사회적 기관이자 유통의 꽃이라 불렸던 백화점이 위기다. 1858년 개장한 미국 최대의 대중 백화점 체인인 메이시스(Macy's)는 올해 68개의 매장을 닫고 직원 1만 여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도 지난해 11월 지방 매장 4곳을 폐쇄했다. 고가 브랜드의 오프라인 매장도 위기다. 영국 패션브랜드 막스앤드스펜서는 지난해 영국 내 매장 30개를 폐쇄하고 의류 사업을 축소하기로 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백화점의 지난해 총 매출 규모는 31조원을 넘겼지만,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쇼핑은 사회의 활기를 보여주는 척도다. 미국 9ㆍ 11 테러가 일어나 미국인들이 집단 우울증에 빠졌을 때,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한 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쇼핑을 하자”였다. 언론들은 텅텅 빈 상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회 내부의 이상 징후와 불안감을 묘사한다.

최근 사람들이 쇼핑을 덜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백화점에서 하지 않을 뿐이다. 백화점들은 불황 타개책으로 상품별 부서(Department)를 쪼개 미니 백화점을 만들었다. 성공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소비자들의 쇼핑 패턴이 완전히 바뀐 탓에 전략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

19세기의 백화점이 시각적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면, 21세기에는 어떤 감각에 호소해야 할까? 1909년 문을 연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의 창업주 고든 셀프리지는 저서 ‘쇼핑의 설렘’에서 쇼핑을 필요가 아닌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그는 “백화점은 상점이 아니라 공동체다. 여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여기가 집보다 훨씬 환해서다”라고 했다.

미래의 쇼핑은 더욱 심화된 체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백화점 매장은 이미 상품을 사는 곳이 아니라 문화적 의미를 학습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백화점의 진열방식은 미술관을 따르고 있다. 백화점은 최소한의 상품만 진열하고 여백의 미를 살린 공간으로 재편성되고 있다. 매장 밖을 나가는 소비자에게 잔향처럼 남는 ‘체험의 여운’을 주기 위해서다. 21세기 백화점은 지금껏 간과했던 인간의 감각, 즉 촉각을 소환해야 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리테일의 미래를 결정할 촉각이란 감정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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