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사람이 있으면 멋없는 사람도 있어야죠. 하하.”
‘유해진표’ 코믹 연기는 언제나 달다. 억지스러운 대사와 과장된 연기로 얼굴을 붉히게 하지 않는다.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자연스러운 ‘생활형’ 연기로 간지러운 곳을 살살 긁어준다. 유해진(47)은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에선 해적에서 산적으로 이직한 철봉이 돼 “음파~ 음파~ 이것만 기억하면 되는 겨! 등신마냥 ‘파음~’하면 뒤지는 겨” 등 맛깔스러운 연기로 860만 관객들 동원한 일등 공신이 됐고,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이 킬러라는 사실을 잊은 ‘럭키’(2016)에선 너무도 진지하게 “제가 서른 두 살인가 봅니다”, “꿈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바로 배우입니다”라는 포복절도 대사를 읊어대며 관객 700만명을 모으는 ‘깜짝’ 흥행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절찬 상영중인 영화 ‘공조’는 가족 등살에 울고 있는 생계형 형사 진태(유해진)가 웃음꽃을 전담한다. 휴대폰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딸과 통화하느라 범인을 놓치고, 정직 처분되자 집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가장으로 전락한다. 더군다나 외모와 두뇌, 몸싸움 등에서 어느 것 하나 이길 수 없는 북한 형사 철령(현빈)과 함께 남북 공조 수사를 한다고 하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물에 적신 휴지로 맨손 격투를 벌이고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등 멋진 액션으로 일관하는 현빈에 비해 체력이 약해 잘 달리지도 못하는 유해진의 상반된 연기가 영화의 활력소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해진은 “현빈의 멋있는 연기를 욕심내면 안 되죠”라고 반문하며 제 역할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저까지 맨손 격투를 하고 와이어 달고 뜀박질하면 영화가 이상하게 흘러가지 않겠어요?”
현빈이 ‘멋있음’을 전담했다면, 유해진은 ‘멋없음’을 맡았다. 그래도 유해진에 눈이 가는 건 완벽하게 ‘멋없음’을 연주해서다. 일단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듯한 대사는 고도의 전술이다. 직접 고민하고 연구한 애드리브의 향연에 눈을 뗄 수 없다. 수갑에 한 손씩 묶인 두 사람이 승용차에 오르면서 낑낑대는 장면은 압권이다. 유해진이 현빈에게 “다리를 좀 벌리고… 옆으로 조금”이라고 말하고, 혼잣말로 “땀나네, XX” 등을 내뱉는다. 그의 “습관”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명장면이다.
유해진은 대본이 새까맣게 닳을 때까지 읽고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공조’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대사뿐만 아니라 다른 배역의 대사에도 첨가할 애드리브가 있으면 적어두는 버릇이 있다. “재희야(그의 매니저 이름)! 펜 좀 가지고 올래”를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공조’에도 애정을 듬뿍 쏟았다. 아내로 나온 배우 장영남이나 처제 역의 임윤아와의 대화에 애드리브 양념을 더해 ‘깨알’ 재미를 노렸다. “실제 가족들이라면 이런 대화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대본 한 귀퉁이에 메모를 했다고.
유해진과 배우들의 ‘케미’가 한 몫 했던 것일까. ‘공조’는 현재 ‘더 킹’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23일 기준)에 오르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유해진의 말마따나 ‘더 킹’과 경쟁이 아닌 “윈-윈 하는 분위기”로 달려가고 있다. 지난해 ‘럭키’의 깜짝 흥행 마법이 또 한번 통할지도 호기심을 유발한다. “(관객들이) 밀어주는 느낌이 있어서 정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 역시 700만이라는 수치가 믿기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항상 잘되면 인생 재미있을까’하시던 한 교수님의 말씀도 늘 가슴에 담고 있지요.”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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