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엑소’!”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는 종합편성채널 정치프로그램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충청의 맹주, 충남 아이돌, 충남 엑소’ 중 어떤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충남 엑소’를 꼽았다. 50대 지도자로서 젊은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행보다.
조기대선을 앞두고 대권주자들이 ‘별명 세일즈’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치인들의 별명은 단순한 애칭의 의미를 넘어선다. 자신만의 특화된 캐릭터를 부각시켜, 정치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김영삼 전 대통령(YS), 김대중 전 대통령(DJ), 이명박 전 대통령(MB) 등과 같이 이름의 이니셜을 약칭으로 사용했던 데 비해, 요즘 정치인들은 자신만의 특화된 별명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문재인 ‘재수 전문’-준비된 후보 강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스스로를 ‘재수 전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책 대담집‘대한민국이 묻는다’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대학 입시도, 사법시험도 재수 한 뒤에 합격을 했다”며 “(대권도전도) 이번에 또 재수를 하고 있는데 역시 잘 되리라 믿는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스스로를 “정치신인”이라거나,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재수한 문 전 대표보다 ‘신상’인 내가 이긴다”고 발언하며 문 전 대표를 구체제 인물이라고 몰아가려는 데 대한 맞대응 성격이 크다.
문 전 대표가 재수를 강조하는 데는 ‘준비된 후보’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한 계산도 깔려 있다. 조기대선이 이뤄지면 대통령직인수위 없이 곧바로 국정운영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자신은 두 번 째 도전인 만큼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반기문 ‘기름장어’ “어려운 일 매끄럽게….”
‘별명 세탁’에 적극 나서려는 움직임도 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름장어’라는 별명에 대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외교부 기자들이 ‘어려운 일을 매끄럽게 잘 풀어나간다’는 의미에서 좋은 뜻으로 나를 평가하며 붙여준 별명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매우 훌륭한 평가를 받은 독일 한스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 역시 ‘기름 바른 사람’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외국 사례까지 들어가며 “‘기름 장어’ 역시 좋은 의미다”고 항변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문제 등 산적한 외교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외교부 장관 시절, 민감한 질문에는 외교적 수사로 답변을 요리조리 피해가 기자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는 평이 무성하다. 외신들도 반 전 총장을 ‘기름장어’라는 별명 뒤에 “까다로운 질문이나 곤란한 상황을 기름 바른 것처럼 피해간다”는 ‘각주’를 친절히 달아 설명했다는 점에서, 반 전 총장의 해석법이 설득되기 위해선 먼저 동생 및 조카를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한 좀 더 확실한 해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불독’ 기득권과의 전쟁 선포
촛불정국에서 거침없는 발언으로 주가를 높이며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신년 언론 인터뷰에서 ‘불독’이란 별명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싸움닭, 불독, 전투형 노무현, 갓재명, 핵 사이다 등등 이 시장을 수식하는 별명은 수도 없지만, 그 중 가장 야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굳이 골라야 된다면 불독이라고 하고 싶다. 앞으로 부정부패세력이나 기득권자들과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하는데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불독 같은 집요함과 끈기 같은 게 필요할 것 같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 23일 소년공 시절 일했던 성남의 한 시계공장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도 “약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거나 “이재명만이 부정부패를 뿌리 뽑을 수 있다”며 기득권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부유층에 대한 토지배당금 신설 등을 공약하며 혁명 수준의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것도 차별화 전략이다.
안희정 ‘충남 엑소’‘안바마’젊은 지도자의 역전드라마
‘충남 엑소(EXO)’로 급부상한 안 지사의 별명은 젊은층 지지자들이 붙여준 것이다. 지난해 인천공항에 캐쥬얼 차림으로 나타난 안 지사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연예인들의 이른바 ‘공항패션’ 사진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안 지사는 정작 남자 아이돌 그룹의 이름인 엑소(EXO)를‘(XO)’로 표기해 친근함을 더했다. 한 네티즌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한 안 지사의 사인에는 “충남 XO 안희정”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이 네티즌은 “충남 엑소라고 적어달라고 했는데 엑스오에서 기절”이라며 “너무 귀여우시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1965년 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로 53세다. 엑소는 알더라도 그 이름을 정확하게 표기하는 방법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안 지사는 최근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빗대 ‘안바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젊은 정치 지도자로, 소통에 능했던 오바마 대통령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오바마 전 대통령이 8년 전 미국 민주당 경선 때 대세론을 달리던 힐러리 클린턴을 잡은 뒤 대권에 성공했다는 점도 포인트다. 문재인 대세론을 잡기 위한 ‘안바마’의 출격을 부각시킬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2일 안 지사의 출마선언 콘셉트는 이 두 별명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장장 5시간에 걸쳐 현장 객석과 실시간 온라인 채팅창을 넘나들며 토론을 진행하며 안 지사는 자신의 젊은 지도자로서의 세련된 매력을 선보였다.
안철수, ‘강철수’이번엔 끝까지 간다 완주의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최근 ‘강철수’로 변신 중이다. 2012년 대선 출마 포기 등 정치적 중요 고비마다 물러나면서 붙은 유약한 이미지를 벗기 위함이다. 안 전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창당해 원내 제3정당으로 녹색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번 대선에서 완주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2일 야권 텃밭인 호남을 찾아 “강철수란 별명을 처음 붙여준 곳이 바로 여기 광주”라며 “그 별명에 따라 작년 총선을 정말 강하게 돌파했고 국민의당을 만들었다”며 별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최순실 청문회를 통해 각각 ‘쓰까요정’, ‘버럭요정'이란 별명을 얻은 같은 당 김경진, 이용주 의원을 거론하며 자신은 “강철요정으로 불러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으며 강철수 이미지를 쌓아가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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