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도 주는 어학원 內 대피소
지난해 이용자 2000명 달해
효율 높은 단기 스터디도 인기
대학생 김모(24)씨는 다음달 토플 시험 준비에 설날 연휴를 통째로 바쳤다. 취업 5대 스펙 중 하나로 꼽히는 교환학생, 그 중에서도 어렵다는 미국에 가기 위해선 고득점을 사수해야 했기 때문. 명절 냄새 물씬 나는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올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이 밀려왔다. “혼자 남은 외로움보다 연휴 분위기에 휩쓸릴까 두려움이 더 컸다”는 김씨는 연휴 첫날인 27일 가장 먼저 서울 종로구 어학원에 자리를 잡았다.
설날 연휴 마무리와 함께 ‘혼설족’(혼자 설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되기를 자처했던 일부 청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토익과 토플 등 당장 코앞에 닥친 어학시험과 빠르면 2월 열리는 상반기 공채 준비까지, ‘남들 쉴 때 하자’는 생각에 평소보다 명절 연휴를 더욱 빠듯하게 보낸 탓이다. 졸업 후 9급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모(28)씨는 “(취업을 못해) 친척들을 만나기 부담스러워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할머니 댁에도 가지 않았다”며 “다 같이 불편한 것보다 혼자 맘 편히 ‘공부 흐름’을 유지하는 게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명 어학원들은 갈 곳 없는 청춘들을 위해 ‘명절대피소’라는 이름으로 연휴 동안 학원 공간 일부를 개방했다. 간단한 간식꾸러미도 제공했다. 서울 종로 파고다어학원 관계자는 “2015년부터 명절대피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지난해에는 2,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찾았다”고 말했다.
연휴 동안 서로 의지하고 감시하기 위해 ‘단기 스터디’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추석 단기 스터디를 해봤다는 최모(28)씨는 “(서로) 친분이 없다 보니 더 엄격하게 운영돼 효율이 높았다”고 전했다. 직접 만나기 어려운 경우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를 통해 기상시간 등을 인증하는 ‘온라인스터디’나 화상채팅 프로그램을 활용한 ‘캠스터디’를 이용하기도 한다. 한 공부블로거가 올린 ‘캠스터디원 모집’ 글에는 순식간에 서른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생존 압박과 불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택했을지언정, 고립되지 않고 서로 머리 맞대며 견뎌가는 청년세대의 모습은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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