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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가대표 출신이 말하는 배구 기록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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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가대표 출신이 말하는 배구 기록원의 세계

입력
2017.01.3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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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희 배구기록원이 기록을 체크하고 있다./사진=이명희 기록원 제공.

[인천=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예전엔 생각대로 움직이면 됐지만, 이젠 관찰자이죠.(웃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던 여자배구 국가대표 출신 이명희(39)씨는 10년 넘게 코비스(KOVIS)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비스 요원은 프로배구 V리그 경기 공식 기록원을 칭하는 이름이다. 2000년을 전후해 구민정(44), 장소연(43) 등과 현대건설 배구단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이명희씨는 2004년 5월 은퇴 후 2005년 V리그 출범과 함께 기록원이라는 명함을 갖게 됐다.

최근 인천 작전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명희 기록원은 "2002년 팀 상황이 좋지 못했다. 해체 얘기도 나왔다. 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이화여대에 입학 신청을 냈고 합격했다"며 "그런데 팀이 유지됐다. 일단은 휴학계를 냈지만, 이후엔 더 이상 휴학이 안 돼 2004년 5월 은퇴하고 학업에 매진했다. 결국 2008년 졸업했다"고 운을 뗐다.

이명희 기록원은 "프로출범과 함께 기록원 수요가 생겼다. 학부시절 배구협회 한 관계자의 연락을 받고 기록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며 "당시 대학 배구부 학생이나 배구선수 출신들이 이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선수시절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질문에 이명희 기록원은 "선수 땐 생각한대로 움직이면 됐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지켜보고 기록하는 입장이다"며 "가끔 '내가 저 선수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란 생각도 하지만, 요즘 시대에 뛸 엄두는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파워, 스피드, 높이 면에서 요즘 선수들이 더 나은 것 같다"며 "특히 서브가 강해진 것 같다. 지금 내가 선수였다면 리시브하기도 좀 두려울 것 같다"고 웃었다.

KOVIS 요원 수는 총 27~28명 정도다. 연령대는 20대 중반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배구선수 출신이 주를 이루지만, 태권도 사범 출신 등 이색 경력의 소유자도 있다. 경기당 개인기록 담당 3명, 전산기록 담당 3명, 관리자 1명 등 총 7명이 배치된다. 이들은 연고지역 없이 다양한 지역을 오간다.

기록원들은 오후 5시에 경기가 있는 날이면 늦어도 오후 3시까진 체육관에 간다. 마이크, 노트북 등 장비들을 설치한 후 오후 3시 15분부턴 감독관들과 회의를 진행한다. 회의에선 전산 문제나 특이사항에 관한 얘기가 오간다. 이명희 기록원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얼마 전 경기 중 기계 전원이 나간 적이 있다. 서로 소통이 안돼서 기록원들끼리 코트 좌우를 뛰어다니며 복구한 적도 있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털어놨다.

기록원들은 장비 점검 후 이르지만 석식 시간을 갖는다. 도시락을 싸갈 때도 있고 배달음식을 먹을 때도 있다고 이명희 기록원은 밝혔다. 기록원들은 경기시작 40분 전엔 체육관에 들어와야 하고 20분 전엔 착석해야 한다.

▲ 이명희 배구기록원이 본지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박종민 기자

이명희 기록원은 "경기 중에는 스코어나 서브 로테이션을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블로킹 포인트 같은 경우 선수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인데 특히 2~3명이 동시에 떠서 블로킹한 경우 신경 써서 확인해야 한다"며 "애매하면 리 플레이 영상을 보고 심판에게 확인을 요청한다.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일부 기록들이 수정되는 경우가 있다. 경기당 10건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에 가서 영상을 확인한 후 기록과 달라 한국배구연맹(KOVO)에 연락해 수정 요청을 한 경우도 있다고 고백했다. 이명희 기록원은 "경기 중엔 사실 화장실도 가기 힘들다"고 웃으며 "2, 4세트가 끝나면 5분 정도 화장실을 다녀온다. 급할 때는 3분 만에 다녀와야할 때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명희 기록원은 좋아하는 배구를 매번 현장에서 볼 수 있는데다, 기록을 끝낸 후 느끼는 성취감이 이 직업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배구 시즌에만 하니깐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는데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명희 기록원은 경기가 없는 날엔 신한대나 이화여대에서 배구 강의를 한다.

이명희 기록원은 직업 전망에 대해 "고용형태가 안정적으로 변한다면 미래가 밝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월 10회 정도 근무하고 경기당 약 17~20만 원 정도를 받는다. 지방 출장을 갈 때도 경비와 식비가 제공된다.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보다 수입은 준수한 편이다"면서도 "그래도 계약직이다 보니 투잡을 해야 할 수 있다. 배구 시즌에만 하기 때문에 이것만 보고 1년을 보내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명희 기록원에 따르면 올 시즌 KOVIS 요원 공개채용이 처음 실시됐다. 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심판자격증, 선수 출신, 컴퓨터 자격증 소지자 등은 우대했다고 이명희 기록원은 전했다.

이명희 기록원은 배구 코트 한 켠에 앉아 있는 기록원들에 대해 "영화로 따지면 조연 정도 되지 않을까 한다"고 수줍게 웃었다. 그는 "물론 존재감만 따지면 엑스트라에 가깝다. 사실 우리가 일일이 기록하는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부연했다. 이명희 기록원은 인터뷰가 끝나자 어김없이 배구 경기가 예정돼 있는 인근 계양체육관으로 향했다.

인천=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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