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중엔 ‘다리’와 관련된 히트곡이 여럿 있습니다. 가수 혜은이의 ‘제3한강교’(1979)를 비롯해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1985) 등이 대표적이죠. 한강을 바라보며 다리를 걷거나 어둠이 깔린 대교를 쓸쓸히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면 상념에 젖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는 쉼 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사랑을 약속했겠죠. 다리 위 사람들의 풍경과 그들이 겪을 감정의 소용돌이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보편적인 소재가 됩니다. 작곡가라면 악상이 떠오를 겁니다.
그렇다면 2000년대 이후 다리를 배경으로 한 가장 유명한 노래는 무엇일까요. 가수 자이언티의 ‘양화대교’(2014)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홀로 집에 있던 소년이 택시 운전사였던 아버지에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라고 답했다는 자전적 얘기로 뭉클함을 준 노래입니다. 양화대교를 소재로 평범함 가족의 삶의 풍경을 녹여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2014년에 발표된 ‘양화대교’는 한 해 뒤인 2015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멜론 등 6개 음원 사이트의 음원 소비량을 조사하는 가온차트에 따르면 ‘양화대교’는 2015년 ‘음원 스트리밍 톱10’에서 9위(6,645만8,899건)를 차지하며 ‘차트 역주행’의 신화를 썼습니다. 같은 해 숱한 화제를 뿌린 걸그룹 EXID의 ‘위아래’(6,493만9,438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갑작스럽게 유명세를 얻게 되면 웃지 못할 사연도 뒤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YG엔터테인먼트 내 흑인 음악 레이블인 더 블랙 사무실에서 만난 자이언티는 “정말 전화가 많이 왔다”며 ‘양화대교’에 얽힌 얘기를 털어놨습니다. 그는 데뷔 초부터 인터뷰를 잘 안 했던 데다, ‘양화대교’로 스타가 된 이후에는 (싱글이 아닌) 앨범을 내지 않아 간담회 자리 조차 없었습니다. 취재진의 질문은 ‘양화대교’에 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이언티는 2015년 별이 빛나는 밤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합니다. 새벽 2시, 5시 가리지 않고 한 밤 중에 ‘나, 양화대교야’라며 전화를 거는 지인들 때문입니다. ‘민폐’에는 나름 법칙이 있었답니다. 대부분 ‘양화대교’ 노래를 튼 채로 전화를 한 뒤 꼭 옆에 있는 사람을 바꿔줬답니다. 팬이라며 아는 척 좀 해달라는 부탁인 거죠. 새벽 2시 넘어 걸려 온 지인 전화는 술을 마시고 오른 취기에 낭만에 빠져 무턱대고 하게 된 연락이었겠지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 동안 이런 일이 반복되었으니 자이언티에게 곤욕이었을 겁니다.
‘양화대교’의 인기로 인한 자이언티의 행복한 비명은 1일 낸 새 앨범 ‘OO’의 곳곳에 담겨 있었습니다. 수록곡 ‘콤플렉스’에는 ‘전화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특히 너네 양화대교 지나갈 때’란 ‘양화대교’와 관련된 가사가 있습니다. 자이언티는 ‘양화대교’로 성장통도 치렀습니다. 그는 또 다른 신곡 ‘바람’에서 “저 사람들은 내가 노래하길 바라. 뭐든 이야기하길 바라”라며 “나는 할 말이 없어, 없는데 위로 되어주길 바라, 내가 뭔가가 되어주길 바라”라고 읊조립니다. ‘양화대교’ 같은 따뜻한 위로의 노래 혹은 이야기를 바라는 주위의 시선에 대한 부담을 털어놓은 겁니다. 자이언티는 ‘양화대교’가 화제가 된 뒤 ‘바람’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놈”이라고 그는 노래 가사로 자신의 심정을 전합니다. ‘양화대교’ 후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에 스트레스가 컸다는 겁니다. 그가 신곡 ‘노래’에서 “이 노래는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해”라고 노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이언티는 ‘양화대교’를 30분 만에 썼다고 합니다. 음악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였습니다. 그는 가족에 하고 싶은 말을 편지에 적는다 생각하고 ‘양화대교’ 노랫말을 썼습니다. 2011년 데뷔 곡 ‘클릭 미’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가 그간 써 온 곡은 60여 개가 넘습니다. 이 곡들 중 가장 빨리 완성한 곡이 ‘양화대교’랍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빨리 만든 곡으로 저작권료 수입으로만 수 억원(2015년 기준)을 챙긴 스타가 됐습니다. ‘젊은 가장’이 된 리듬앤블루스(R&B)가수는 어머니께 차도 선물했다네요.
자이언티는 멋 부리지 않고 말하듯이 삶의 민낯을 노래에 담는 재능을 지닌 가수입니다. 뻔한 사랑 노래만 부르는 R&B가수와 다른 그의 장점이지요. 그는 “의도하고 힐링송을 만든 게 아니”라고 부끄러워했지만, 2015년 낸 ‘꺼내 먹어요’도 ‘양화대교’ 못지 않은 ‘힐링송’ 중 하나였습니다. “배고플 땐 이 노래를 아침 사과처럼 꺼내 먹어요”라는 그의 속삭임에, 일상에 지친 많은 이들이 위로를 얻었죠.
하지만, 자이언티만의 음악적 치유의 언어는 새 앨범 ‘OO’에서 다소 약해진 것 같습니다. 가사의 재치는 여전하나, 누군가의 쓸쓸함을 보듬어 줄 곡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타이틀곡인 ‘노래’와 ‘콤플렉스’는 가수로서 그의 경험을 지나치게 담아, 거리감을 줍니다. 노래가 오랫동안 누군가에 소비되려면 청취자가 ‘내 얘기’라 느끼며 곡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여백이 가사 안에 있어야 하는데, 너무 ‘가수 자이언티’ 얘기라 몰입이 안 된다는 얘깁니다. ‘영화관’에서 보사노바 장르를 시도하는 등 멜로디에 아날로그적 따뜻함이 스며든 점은 인상적이나, 전반적으로 그의 이야기가 가벼워진 인상은 지울 수 없습니다. 자이언티가 새로운 ‘양화대교’로 밤 늦게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며 홍역을 치를 일이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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