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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칼럼] 도서관 도시가 그리운 이유

입력
2017.02.0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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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일과 애들 교육까지, 뒤늦게 시작한 유학 시절은 아름답거나 낭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식구들 도시락 준비에, 운동 좋아하는 아들들 밥 해 먹이느라 아침은 늘 전쟁이었고, 지하철, 버스를 갈아타고 시내로 들어가면 이미 파김치였다. 그런 내게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몇 블록만 가도 어김없이 있는 공공 도서관이었다. 고전부터 최신 과학도서까지 구비된 책의 양과 질도 좋았지만, 널찍하고 편안한 독서공간에 친절한 사서까지 있어 평화롭게 재충전할 수 있었다.

어느 도시건 제일 중요한 요지에는 꼭 도서관이 있는 덕이었다. 읽던 책을 파는 가난한 청년에게서 책을 사는 골목의 즐거움이나 오래된 헌책방을 찾는 것도 고달픈 외국생활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지하철이나, 휴가지에도 대부분 꼭 책들을 챙기고 자기가 쓰던 물건을 마당에 진열해 파는 창고 세일 (garage sale)의 중요 목록 역시 책인 선진국의 힘이 부럽기만 했었다.

그런 마음을 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국의 도서관을 찾았지만, 도서관의 숫자와 장서양도 기대보다 부족했고 풍경도 달랐다. 고시 등 시험공부를 하는 이가 더 많았고, 설계와 디자인 탓인지 이용숫자가 적은 탓인지 썰렁했다. 다행히 요즘 새롭게 여는 도서관들은 디자인과 설계가 훨씬 아름답지만, 가까운 곳에 도서관의 숫자가 더 많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싶다. 이제는 도서관 가기가 불편하니 서점 아니면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한다. 필요할 때 다시 보는 습관도 있지만, 멀리 도서관까지 가도 원하는 책을 금방 빌려 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어린 시절 동네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던 두 아들은 귀국한 후론 책을 점점 멀리한다. 필요한 정보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다운 받는다고 했다. 학교와 직장에서 해야 할 의무가 엄청났기 때문에 한가하게 책 볼 시간이 없다는 얘기가 아예 틀리지는 않다. 부모에게 손 벌릴 나이가 지났으니 공짜로, 혹은 저렴한 eBook을 이용해 지식에 대한 필요를 나름 채우는 것 같다. 지독한 책벌레였던 아이들이 그 정도이니, 거대한 서적 도매상이 부도를 맞고, 출판사와 작은 서점들이 허덕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특히 요즘 탄핵 정국이라는 정치 뉴스에 워낙 드라마 같은 요소가 많기 때문인지, 독서와 담을 쌓은 한국인들이 더 책을 멀리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커피 전문점에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보는 이들, 수다를 떨거나 카톡에 몰두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그 시간에 도서관에 머물면서 책을 읽고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자신의 잘못된 신념에만 맞는 엄청난 가짜 뉴스를 카톡방이나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으며 위로와 소속감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이들, 게임 아니면 드라마만 보느라 자신의 재능이나 잠재력은 개발하지 못하는 이들이 다양하고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반짝이는 영감과 훌륭한 삶의 방식을 배운다면 지금과는 훨씬 다른 모습의 인생을 살지 않을까 싶다. 당장 학비와 생활비만으로도 허덕이는 젊은이나, 빈곤한 노인에겐 사실 책 사는 비용조차 부담이 되니, 점점 황폐해서 창조력과 독해능력이 고갈되는 책임을 그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집세, 식비, 교통비는 줄일 수 없으나 문화생활비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이나 카페같이 안락한 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빌려 볼 수 있고 각종 문화행사까지 해 주는 도서관의 존재가 그래서 더욱 아쉽기만 하다.

대중의 여론이 극단과 폭력으로 치닫는 이유가 다양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이들의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문맹률은 가장 낮지만, 일 년에 책 한 권도 사지 않는 이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일본과 대만 미국은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책과 잡지를 파는데, 우리는 신문 판매대마저 사라져 간다. 수십만 박사들도 대부분 시간제 계약직으로 주변 도움 없으면 최저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이니 그들의 지식이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작가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지만, 베스트셀러 시인들조차 생계를 걱정한다. 청나라의 철학자 대진(戴震)은 악의 근원을 이기심에 사로잡힌 집착(私), 망상과 속임수(蔽)라고 했다. 이 두 가지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다. 돈 없는 대중들은 고사하고, 해서는 안 될 말과 글만 부끄럼 없이 거칠게 쏟아 내는 정치꾼들과 소위 리더들이, 마음 잘 닦는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스스로의 현재가 얼마나 추한지 알아차린다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야만과 무지의 세월이 오래갈수록, 가치와 품격을 가르치는 책과 도서관이 더욱 아쉽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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