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위험군 11만여명 추정
2012년 이래로 꾸준히 증가
PC방비 안 준다고 부친살해
현실구분 장애 심각한 범죄로
입시 스트레스 큰 나라일수록
게임중독, 사회문제로 떠올라
‘현질 얼마가 적당하냐고요? 대중 없습니다. 투자를 많이 할수록 더 강해지죠.’
2015년 한 온라인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김모(18)군의 눈이 반짝거렸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김군이 ‘현질’(게임에 현금을 사용하는 행위)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도 그 때였다.
국내 한 대형 게임사의 ‘롤 플레잉 게임’에 빠진 김군은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희귀한 게임 아이템을 얻어내기 위해 끼니를 걸러가며 하루 10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렇게 모은 아이템과 아이디 등을 비싸게 되판 결과 많게는 200만원 가까운 돈이 손에 들어왔다. 유행을 타는 게임의 특성상 제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곧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며 가까운 친구들까지 말렸지만, 이미 이 게임에 중독된 김군은 “지금처럼 벌면 대학도 직장도 다 필요 없다”고 말하며 매일 같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지금도 그의 컴퓨터 옆에는 매일 빈 컵라면 용기가 가득 쌓여 간다.
온라인 게임 중독이란 가상세계의 검은손이 청소년들을 위협하고 있다. 건전한 여가활동 수준을 넘어 김군의 경우처럼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게임에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청소년은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5년 국내 초ㆍ중ㆍ고등학생 15만2,841명을 대상으로 한 ‘게임 과몰입 종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게임과몰입군(게임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은 2015년 0.7%(약 1,070명)로 2014년과 같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언제든 중독의 덫에 걸릴 수 있는 과몰입위험군은 2012년 1.2%에서 해마다 점차 증가해 2015년 1.8%(약 2,751명)로 조사됐다. 국내 전체 초ㆍ중ㆍ고교생이 작년 현재 600만명 가량이라는 걸 감안하면, 11만여명이 게임 중독 증세를 보이는 문제군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다.
지난해 이 기관이 국민 3,045명(만 10~65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10대의 84.9%가 게임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게임이 일부 청소년들만의 문화가 아닌 것이다.
게임에 대한 과도한 몰입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심각한 일탈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 더 우려된다. 게임 속 가상세계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른바 현실구분 장애는 게임 속 캐릭터의 전능함에 대리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 마치 게임 속 세계를 실제인 것처럼 착각한 나머지 더 쉽게 일탈행동을 저지르게끔 한다. 주로 게임을 말리는 가족이 그 대상이 된다. 지난해 8월 PC방에 갈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53)를 때려 숨지게 한 아들(14)도 당시 하루에 두 차례 이상 PC방을 드나들 정도로 심각한 게임중독에 빠져 있었다.
게임을 하지 않을 경우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등 게임중독의 병적 현상까지 나타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당국은 게임을 못하도록 차단하는 ‘셧다운제’(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심야시간 게임을 제한하는 제도) 외에는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게임 외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청소년 여가 문화 확립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게임중독이 문제가 되는 나라는 한국, 중국, 싱가포르 등 입시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라며 “청소년들이 게임 말고는 즐길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게임을 못하도록 막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보호자인 부모의 역할도 강조된다. 유우경 한국온라인게임중독예방연구소장은 “자녀가 어떤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 모니터링 해 어느 순간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자녀에게 지속적으로 각인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