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G클래스는 없었다. 우리가 G바겐이라 부르는 터프가이가 ‘럭셔리’ 코트를 걸치고 나타났는데 그 이름 G 650 랜돌렛(Landaulet). 수트트가르트의 유서 깊은 가문의 문장을 빌어 메르세데스 마이바흐가 만든 최고급 SUV다. 마이바흐가 한층 고급스러운 메르세데스를 지향하는 서브 브랜드로 거듭난 이후 S와 S 650 카브리올레를 잇는 새로운 모델이다. G클래스의 계보로 보자면 G 63 6x6와 G 500 4x42 이후 가장 커다란 변신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V12 엔진과 사륜구동, 전동식 패브릭 톱을 단 리무진 조합은 ‘사막의 롤스로이스’라 불리우는 레인지로버도 상상하지 않았던 장르다. 군침을 흘리며 SUV 시장에 뛰어든 롤스로이스를 견제하기 위한 마이바흐의 해석 같기도 하다. 사진을 보니 극적으로 바뀐 건 운전자가 아닌 뒷좌석에 앉을 승객을 위한 공간이다. 더 나아가 딱 ‘99대’만 만들 예정이다. 남다른 특별함을 원하는 고객을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겠지만 강렬한 존재감만 본다면 차고 넘칠 것 같다.
찾고 살필수록 비현실적인 숫자 퍼레이드는 계속된다. 차체 길이는 5,345밀리미터, 당연하게도 휠베이스 또한 3,428밀리미터에 이른다. 높이는 2,235밀리미터인데 그 또한 평범의 수치를 거부한다. 고작 4인승 자동차를 이렇게 만들다니 현기증이 난다. 연비는 5.88km/ℓ(유럽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97g/km로 가히 북극의 빙하를 녹이는 수치 아닌가? 타이어 또한 사이즈(325/55 R 22)가 어지간한 트럭을 넘어선다. 630마력 V12 바이터보 엔진은 무려 1000Nm의 토크를 말 그대로 뿜어낸다. 그러나 AMG의 몫은 딱 여기까지다.
예나 지금이나 G클래스는 미국과 중동의 부호들 차고 안에는 꼭 한 대쯤 개비된 오프로더지만 이 차는 역할은 따로 있다. G 650 랜돌렛은 남들과 다른 컬트적 G클래스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마이바흐의 맞춤형 제안이다. 그들은 특별함을 담당한 집사답게 고객이 지갑에서 5억쯤 턱 꺼내어 호기롭게 지불하도록 애쓴다. 이제 디테일한 면면을 보자.
오프로더지만 쇼퍼드리븐에 도전하는 독특한 컨셉트는 실내에 구현됐다. 커다란 소프트톱이 전동으로 접히면 뒷좌석 승객은 독립 좌석에 앉아 하늘을 즐긴다. 버튼 하나 누르면 나타나는 샴페인 글라스는 기본. G클래스보다 578밀리미터 늘린 휠베이스는 뒷좌석 공간에 할애됐다. 끝까지 젖힐 수 있는 멀티컨투어 시트가 포인트다. S클래스 마이바흐에서 익히 봤던 핫 스톤 마사지 기능과 송아지 가죽으로 꾸민 근사한 시트는 여전하다.
게다가 냉온 조절 컵홀더가 있는 비즈니스 콘솔이 제공된다. 항공기 일등석의 분위기와 흡사한 접이식 테이블을 품었다. 가죽으로 감싸 필기가 편한 표면은 사진만으로도 아주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후방 모니터는 두 개이며 카본파이버 내장재와 어디서 많이 읽은 ‘디지뇨’ 라는 이름까지. 마이바흐 레터링이 수놓아진 S클래스 꽁무니는 국내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전세계적으로 1만5,000대 이상의 마이바흐가 생산됐지만 아직 풀만과 컨버터블의 데뷔가 남아 있다. 브랜드의 성공을 이끈 디터 제체 박사는 요즘 시쳇말로 무지 잘나가는 중이다.
여기까지 쓰다가 잠시 멈췄다. 1979년 이래 지금까지 원형을 잃지 않았던 G클래스의 변화를 지켜보니 다소 씁쓸하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그림 속 떡 아닌가? 저 멀리 중동의 미끄덩거리는 기름 왕자를 위한 한정판매쯤으로 치부하고 그냥 사진만 감상하자. 혹시라도 이 차를 주문하려는 한국인이 있다면 그 호기로운 취향만큼은 높이 산다. 구매하면 내게도 한번쯤 구경 좀 시켜주시고.
참, 랜돌렛은 독일 스투트가르트 기반을 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자동차 메이커다. 1910년형 벤츠 25/45 PS, 1960년형 메르세데스-벤츠 300d, 1964년형 메르세데스 벤츠 600 풀만, 2008년형 마이바흐 랜돌렛 등을 만들었다. G650 랜돌렛 제작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있는 마그나 슈타이어가 맡았으며 올해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한다. 99대 한정 실제 판매는 올해 가을부터다.
한국일보 모클팀(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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