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3성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 사회에선 한국의 언론보도를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넓은 의미에서 한국이나 북한과의 무역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고 중국의 언론 환경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남 피살 사건이 발생한 뒤 북중 접경지역의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현지의 한 ‘소식통’과 통화를 한 적이 있다. 10여분 가량 얘기를 주고받은 뒤 전화를 끊으려는데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도대체 김정남이가 죽은 거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네?”하고 되물었다가 잠시 후 질문의 요지를 이해했다.
그는 여야 정당들과 대선후보들에 대한 기사도 꽤 많이 읽는 듯했다. 사실 중국에서도 한국의 유명 포털은 물론 웬만한 언론사 홈페이지 접속이 가능하다. 60대 초반인 그가 직접 인터넷 서핑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난 12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13일 발생한 김정남 피살 사건 등과 관련한 한국 언론의 보도내용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중간중간 힐난을 섞어가며 그가 말한 요지는 이렇다. “북한과 관련해 무슨 일만 있으면 무조건 ‘그래서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식으로 간다.” 그는 고체연료 사용에 따른 ‘킬 체인’ 무력화 가능성 등 한국 언론들의 분석 기사를 인용하는가 하면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상황이 변해 사드를 반대할 명분이 약해졌다”는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발언도 언급했다. “탄도미사일 도발에 이어 김정남까지 피살되니까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서 나오는 얘기 아니겠느냐”고 반박했지만 개운치는 않았다.
한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면서 가욋일로 대북사업도 하는 이 소식통은 사드 때문에 한중관계가 악화돼 자신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도 분명히 있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혹은 가능성)에 관한 기사를 쓸 때마다 느끼는 갑갑함이 한 편에 맞닿아 있음도 분명하다. 최근 이뤄진 한국산 화장품 반품이나 비데ㆍ공기청정기 불량 판정 등이 사드 보복인지는 솔직히 단언하기 어렵다. 사드 배치 결정 이전부터 강화돼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결과이면서 사드 배치 결정 이후부터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댄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 내부다. 정치적 격변기엔 어김없이 안보논리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듯한 악순환이 이번에도 반복되고 잇다. 조기대선이 가시권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은 거리낌 없이 ‘사드 반대 = 안보 포기’를 주장하고, 일부 야당은 외연 확장을 핑계로 부화뇌동한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피살로 인해 안보 불안감이 커진 건 분명하지만 사드 논란을 둘러싼 사정 변화는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이 있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대선 구도가 출렁였다. 이후 상황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국가안보가 존립의 문제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안보가 정략의 산물이 되고 정치적 계산의 대상이 되면 그 후과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사드가 과연 군사적으로 효용성이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어린아이 투정 쯤으로 폄하하고, 천문학적인 ‘안보비용’을 우려하면 “중국 눈치나 본다”며 사대주의자로 치부하는 건 단언컨대 ‘안보장사’다. 게다가 안보와 관련한 모든 문제가 ‘기→승→전→사드’라는 논리구조를 갖는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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