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0일 ‘8인 재판관 체제’에서 탄핵심판 사건을 결론 짓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15차 변론기일인 이날 헌재는 오는 22일 탄핵일정 시간표를 확정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하는 한편 소송지휘권 행사를 통해 쾌도난마식 결정을 이어갔다. 대통령 측의 시간지연 전술에 더 이상 끌려갈 수 없다는 듯 증인 취소, ‘고영태 녹음파일’ 검증신청 불허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날 신문이 예정됐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의 증인채택을 직권으로 취소했다. 김 전 실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최 차관은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재판부가 “지난 7일 김 전 실장이 나오지 않으면 증인신청을 철회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겠냐”고 묻자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24일에 출석할 수 있다고 본다”며 버텼다.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핵심 증인이 아닌데도 2차례 출석 기회를 드렸다”고 일침을 놓은 뒤 증인 채택을 직권 취소했다. 대통령 측이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를 재차 증인으로 신청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미 한 번 채택이 취소된 증인을 다시 소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탄핵기획설 논란을 빚었던 ‘고영태 녹음파일’ 검증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대통령측 요구를 일축했다. 그러자 헌법재판관 출신인 대통령 측 이동흡 변호사가 “형사소송법은 녹취파일 증거조사시 파일을 재생하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며 반발했지만 강 재판관은 “피청구인(대통령)에 유리한 부분은 자유로운 증명이 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물리쳤다.
헌재의 단호한 진행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8인 체제’를 지키겠다는 재판부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말이 나왔다. 박 대통령 출석 여부가 약간의 변수가 될 수 있지만, 헌재가 신속하게 결론을 내기 위해 직권을 발휘한다는 분석이다. 이 권한대행의 퇴임일(3월13일) 이후에는 헌재 구성의 불완전성에 따른 탄핵심판 왜곡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통령이 출석하거나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이 일괄 사퇴를 하더라도 최종 변론만 28일께로 미뤄질 뿐 이 권한대행 퇴임 전 선고는 헌재의 확고한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 권한대행의 변론 종결 선언 후 대통령 측 김평우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의 막말로 대심판정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김 전 회장은 “12시에 변론을 끝내야 한다는 법칙이 있냐”며 “함부로 재판을 진행하냐”고 소리쳤고, 이에 합세해 고성을 낸 방청객이 방호원에게 이끌려 퇴정 당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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