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영어로 말하기-
우리말에 '친구의 적은 적'이라는 표현이 있다. 영어로는 'Your enemy's friend is your enemy.'라고 말하는데 같은 문장에 상호 반대되는 어휘가 동시에 등장하는 '역설'과 '모순'의 표현법 paradox다. '진실은 쓰디쓴 꿀'(Truth is honey which is bitter.)이라는 비유법 문장 또한 달콤하다는 honey가 나오고 쓴 맛을 일컫는 bitter가 동시에 나오는 역설적 문장이다. 역설이나 반어법은 표현의 도구로서 유용할 때도 있지만 잘못 쓰면 역효과가 난다. 특히 어렵거나 복잡하게 사용하면 오해를 사는 일이 발생한다.
영국의 극작가 Oscar Wilde는 '유혹 말고는 모두 거절할 수 있다'(I can resist anything but temptation.)고 했는데 사실 이런 말은 이렇다 할 의미가 없는 문장이다. 사람이 유혹 말고 다른 무엇을 경계해야 한단 말인가. 또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이 'I'm nobody'라고 말하면 문장으로서는 주어와 동사 보어의 완벽 구성이지만 의미로는 '나는 아무도 아니다'란 맹탕의 문장이 된다. 본인이 존재를 부인하면 누가 이를 입증하고 장담하겠나.
역설이 좋은 교훈을 주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이 극작가 Benard Shaw에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Shaw는 '젊은이 가장 아름답다. 그러나 젊음이 아이들 때문에 낭비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Shaw가 말한 문장의 원문은 'Youth is the most beautiful thing in this world and what a pity that it has to be wasted on children!'이었지만 후에 'What a pity that youth must be wasted on the young.'로 와전되었고 유명해졌다. 젊을 때는 객기를 부리고 멍청해서 무엇이 소중한 줄 모르고 사는데 노인들이 보기에는 시간과 건강과 지성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노인들은 가장 귀하다는 '젊음'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미 귀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역설이다.
역설의 교훈을 가장 멋지게 쓴 이는 셰익스피어일 것이다. 그의 작품 Hamlet에선 아들이 사람을 죽인 것을 어머니에게 고백하며 사용한 'I must be cruel, only to be kind'가 있다. 직역해보면 '잔인하게 들리지만 이것이 나중에 상대를 배려한 것'이다. 지금은 아프지만 진솔하게 얘기해주는 것이 상대에게 차라리 도움이 되고 나중을 위해 나은 선택이라는 조언이다. cruel과 kind라는 대립 단어가 동시에 쓰인 'paradox'의 문장이 된 것이다. 보통 친구에게 '지금 아프고 고통스런 얘기이지만 이것이 진정 친구를 위한 것'이라고 고언(苦言)을 말할 때 쓰여 좋은 교훈을 준다.
이외에 어려운 역설이 쓰였지만 엉뚱한 말을 하는 예도 있다. 예를 들어 'A rich man is no richer than a poor man.'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보다 더 부자는 아니다'란 말이다. 그러나 Rich와 poor의 대립되는 어휘 조합이 엉뚱한 뜻을 만든다. 이 말의 의미를 새겨보면 결론은 'Nothing'으로 끝나는데 부자는 더 이상 필요한 게 없을 것이고(A rich man needs nothing.)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게 없기(A poor man has nothing.) 때문에 결국 둘 다 똑같은 처지라는 억지스런 말이다. 이는 마치 'If you eat, you die'와 다를 바 없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지만 먹게 되면 결국은 늙고 시들어 죽고 만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 억지스러운 말이 된다. 이처럼 모순어나 반어법은 분명 멋과 기교로 사용할 수는 있어도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되는 비유법이라 신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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