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2.23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 1887~1940)를 소개하며 함께 언급했던 W.E.B. 두 보이스(Du Bois)가 1869년 2월 23일 태어났다. 그는 흑인들이 실력으로 백인들로부터 권력과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여겼던 가비ㆍ맬컴 엑스 등의 강경파와 달리 교육과 캠페인,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인종 차별을 극복하고자 했던 마틴 루터 킹 계보의 선구자였다.
아이티 백인지주 출신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를 둔 ‘뮬라토’로 매사추세츠주 그레이트 베링턴에서 태어난 그는 상대적으로 차별을 덜 받으며 백인들 틈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다. 그는 1885년 테네시주 내슈빌의 피스크대학에 진학하면서 인종주의의 참담함을 처음 경험했다고 한다.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여름에 일도 하고 친구들에게 빌리기도 했다지만, 그래도 그는 당시 흑인으로선 특권층이었다. 석사 학위를 딴 뒤 해외 연수프로그램으로 베를린대로 유학, 19세기 말 유럽의 혁명적 사회과학 이론들을 익혔고, 귀국 후인 1895년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그는 학자로서, 현실의 인종주의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1899년 사례연구 논문 ‘The Philadelphia Negro’등이 그 예였다. 그 논문에서 그는 10명의 흑인 중 한 명꼴로 리더가 탄생한다는 ‘재능 있는 1/10(The Talented Tenth)’이란 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훗날 그는 애틀랜타대 교수를 지냈다. 14편의 에세이를 모은 1903년 저서 ‘흑인들의 영혼 ‘The Souls of Black Folk’은 인종주의 관련 고전으로 꼽힌다.
그는 1909년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창립 멤버로 가담한 거의 유일한 리더급 흑인이었다. 창립 초기 백인이 주도하던 단체에서 그는 기관지 ‘The Crisis’의 편집인으로 34년까지 활약했고, 45년 유엔 창립 때도 미국 대표의 일원으로 가담했다.
말년의 그는 범아프리카주의를 옹호하며 가나로 이주, 아프리카통일기구(OAU)의 전신인 범아프리카회의(PAC) 출범을 도왔고 아프리카인 디아스포라 백과사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마틴 루터 킹의 워싱턴 연설-“I Have a Dream”- 하루 전인 1963년 8월 28일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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