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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은 억울하다

입력
2017.02.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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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 27%... 한국사회 보편적 형태로

자아실현, 비용부담, 이혼 등 배경 다양

결혼반지의 자리, 약지를 비운다 한들 그게 어때서. 이렇게 한 손 가득 빛이 나는데. 왕태석 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결혼반지의 자리, 약지를 비운다 한들 그게 어때서. 이렇게 한 손 가득 빛이 나는데. 왕태석 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여행사 대표 최영은(50ㆍ가명)씨는 10대 때부터 비혼을 결심한 싱글이다. 여성 대부분이 결혼 후 가정사를 홀로 책임지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애초부터 뛰어들고 싶지가 않았다. 때로 들려오는 ‘철없고 이기적인 여자’ 소리가 언짢았지만, 사업을 일으켜 고용을 창출했고, 여러 단체에 기부금도 내는 자신의 삶이 ‘공익적이지 않다’는 지적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만큼 자부심도 크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으로 무장된 그도 수영 강좌에 나갈 때만큼은 마음의 갑옷을 더 단단히 챙겨야 한다. 강사가 정겨운 표정으로 자신을 격려할 때마다 불쑥 당혹감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어머님! 어머님은 부력이 정말 좋으세요!”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타박도, ‘애를 안 키워 봐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비난도 삶으로 반증하며 꿋꿋하게 견뎌왔건만, 복병은 다른 데 있었다. “왜 중년 여성은 돌아다니면 다 낳지도 않은 애들의 ‘어머님’일까요. 회원님, 손님 등도 있을 텐데 나이든 사람이니 ‘당연히’ 결혼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들을 때마다 씁쓸하죠.” 친근함의 표현인 건 알지만, 매번 ‘이들의 뇌리에서 나는 정상범주 밖에 있구나’라는 실감이 돌아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안 그래도 ‘비혼이라 성격 까칠하단’ 소리에 질릴 대로 질린 최씨는 늘 속으로만 외쳐본다. “나 어머님 아님!”

결혼이 지당한 인생 수순이던 시대는 갔다. 기혼 상태만을 성공과 행복의 표식으로 여기는 판타지도 끝났다. 23일 발표된 통계청 ‘1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8만1,700건으로 1974년(25만 9,600건)이래 42년 만의 최저치다. 이미 2015년 기준 한국사회의 가장 보편적 가구형태는 1인 가구(27.2%)다. 2인(26.1%), 3인(21.5%), 4인(18.8%) 가구가 그 뒤를 잇는다. 40대 이하 젊은층에서는 절반이 넘는 52.8%가 1인 가구다. 그러나 갱신의 기미가 없는 태도가 하나 있다. 비혼(非婚)을 미완성ㆍ비정상ㆍ비주류ㆍ예외로 취급하는 경향과 관례다.

비혼은 미혼(未婚)이라는 단어가 혼인을 ‘원래 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어휘다. 한동안 ‘자발적, 주체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나 의지’를 주로 뜻했지만, 제도적 결혼 상태가 아닌 여러 경우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비혼인 배경은 가지각색이다. 자유가 좋아서. 꿈만 쫓기도 바빠서. 비용이 부담돼서. 가부장적 문화에 편입되고 싶지 않아서. 결혼서류로 묶이지 않는 연애나 동거를 선호해서. 배우자와 이별해서. 처음부터 아이만 키워서 등등.

비혼의 얼굴이 이렇게 다양한데도 이들을 괴롭히는 표정은 하나다. 세상엔 ‘결혼을 꿈꾸는 미혼’과 기혼만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의 빈곤, 그리고 수반되는 의식적ㆍ무의식적 무례다. 사소하다고 여기기엔 일상다반사로 비혼자를 따라다니는 당혹, 푸대접, 곤욕을 들여다봤다. (☞관련기사 2,3면)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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