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진영 참가자 만나면
“왜 여길 서성이냐” 비판
인화성 물질 휴대 적발도
양측 모두 탄핵심판 선고까지
집회 예정일마다 총력전 예고
정치권 등 자극적 발언 위험수위
“국민 감정 대립 이어지면
어떤 결과 나와도 국론 분열
경찰이 자제 적극 나서야”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주최 14차 탄핵무효 애국집회(태극기집회)가 한창이던 25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집회 참가자들이 갑자기 한 쪽으로 우르르 몰리더니 촛불집회 참가자들로 보이는 4명의 젊은이를 에워싸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경찰이 제지하고 나서자, 이번엔 젊은이들 쪽에서 ‘박근혜 탄핵’이 적힌 피켓을 들어올려 상대방을 자극했다. 곳곳에서 이들을 향해 “죽여버려야 한다” 등 온갖 폭언이 쏟아지면서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비슷한 시각 옛 서울시청이던 서울도서관 앞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30대 남성에게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왜 자꾸 여길 서성이냐”고 욕설을 했다. 남성은 “광화문광장으로 가기 위해 시청역에서 내렸을 뿐”이라고 했지만, 태극기집회 참가자 박경희(83)씨는 “집회 때마다 일부러 이곳을 서성이며 시비를 건다”고 오히려 따졌다.
열린 시민들의 광장에 국민 분열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27일 헌법재판소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과 28일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기간 만료 등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종착지에 다다르며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선 탄핵 찬반 입장으로 갈린 시민들 간 충돌이 빚어졌다.
26일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과 탄기국이 밝힌 집회 참가자 수는 각각 100만명과 300만명으로, 실제 현장에는 양측 모두 올해 가장 많은 인원이 모여 탄핵 찬성 또는 반대를 외쳤다.
두 단체는 탄핵심판 최종선고일(3월 13일 이전 예상)까지의 집회 예정일마다 ‘총력전’을 예고하고 있어 벌써부터 과격·극단행동으로 인한 불상사가 우려되고 있다. 고조되는 갈등을 해결해야 할 정치권과 각 진영 인사들이 헌재 탄핵결정에 대한 불복이나 보복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권 대선주자들이 탄핵 기각 시 불복을 시사해 ‘법치주위를 훼손하는 자세’라는 비판을 받은 데 이어, 그 정반대 편인 태극기집회 연단에선 이날 자극적인 발언이 쏟아졌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탄핵안이 인용된다면 헌법재판관 중 어느 누구도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정광용 탄기국 공동대표는 “대통령이 탄핵되면 아스팔트에 피를 흘리는 정도를 넘는 어마어마한 참극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특정인에 대한 신변 위협 등 위법 행위가 크게 늘고 있다. 이날 서울경찰청은 최근 보수단체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린 최모(25)씨를 입건했다. 정동 대한문 인근에선 인화성 액체를 휴대하고 있던 이모(68)씨가 불구속 입건되고,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소속으로 알려진 양모(69)씨가 해병대 복장을 한 사람들에게 맞아 다쳤다는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촛불집회 참석을 예고했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해를 가하겠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문 전 대표에 대한 신변보호에 나서는 일도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거칠어지는 광장 대립이 법치주의 훼손과 시민의식 후퇴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합의된 절차로 풀 문제가 국민 간의 감정대립으로 이어지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국론 분열이 일어난다”며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 집행부를 만나 자제를 촉구하는 등 사회질서를 위한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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