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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ㆍ자동화…정부는 아직도 개념 못잡고 뜬구름만

입력
2017.02.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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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호만 있고, 디테일이 없다

지난 22일 경기도 현대위아 의왕연구소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 제1차 회의가 오전 10시부터 열렸다. 위원회는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교육부, 미래부 등 관계부처 장관 15명과 민간위원 14명으로 구성돼, 교육, 기술, 복지 등에서 5년 내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들을 제시한다는 목표를 내건 정부 컨트롤타워다.

난상토론이 이어졌지만 정부의 준비 부족에 대한 이런저런 성토만 있었을 뿐 뾰족한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위원회는 4월까지 마스터플랜을 내놓기로 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참석자는 “위원장인 유일호 부총리가 ‘선진국 발전 모델을 따라가는 추격자 전략에서 선도자 전략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같은 안일한 대응으로는 어림없는 얘기”라고 전했다.

장윤종 산업연구원 연구부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개념 설계조차 안돼 있다”며 “정부가 여러 회의체를 만들어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공부하는 자세는 좋지만 효과적으로 갈 수 있게 하려면 개념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경제ㆍ사회 변화와 대응방안에 대한 정부의 준비는 이제 막 첫발을 뗀 걸음마 수준이다. 정부기관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모호한 답변뿐이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해) 실증적인 연구는 별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구체적인 정책제안을 한 것은 없죠.”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 “구체적인 가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정부가 제대로 된 예측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고용노동부 관계자)

정책의 밑거름이 될 연구 상황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5년까지 1,6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치를 내놓았지만, 이는 산업계에 대한 실증 연구가 아니라 인공지능 전문가 등 21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였을 뿐이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 중요성을 감안할 때 정부가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연구를 적극 유도해서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선진국의 대응은 훨씬 구체적이다.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가 지난해 10월과 12월 내놓은 ‘인공지능의 미래를 위한 준비’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 보고서는 매우 인상적이다. 이 보고서는 자율주행차량으로 사라질 일자리 수치를 근로 유형별로 매우 구체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현재(2015년 5월 기준) 16만8,620명인 버스 운전자의 경우 자율주행차량으로 최소 60%(10만1,170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망한다. 대형 트럭과 견인 트럭 운전자의 경우 그 타격이 훨씬 커서 167만8,280명 중 80%(134만2,620명) 이상이 실업자로 전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비한 권고 대책 역시 매우 구체적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 사회안전망 강화, 인공지능 표준화, 직업훈련 비용 확충 등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세부적인 대응방안을 담고 있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발 빠른 분석과 대응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유럽의회도 최근 ▦로봇세 도입 ▦로봇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 ▦로봇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는 ‘킬 스위치’ 의무화 방안 등을 놓고 활발하게 찬반 토론을 진행 중이다.

스위스 금융그룹인 UBS가 4차 산업혁명 준비도를 측정한 결과 한국이 25위에 그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한국은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법 체계의 정비(법적 보호)에서 63위, 노동시장 유연성에서 83위였다. 노동숙련도(23위), 인프라(20위), 교육(19위) 부문도 뒤처졌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할 설정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가열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게 첫 번째이고 그러려면 재원이 필요하다”며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고용해서 수익을 많이 내는 이들에게 추가적인 세금을 받아서 재교육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식으로 사회적 통합 차원의 접근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기술발전에 대해서는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식 무차별적인 개입하면 오히려 저해요인이 될 공산이 크며, 정부의 역할은 기존 칸막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은 산업의 경계를 해체하고 연결하고, 복합적이고, 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정부는 종래에 해온 방식대로 하려고 한다”며 “4차 산업 혁명의 개념조차 부처 특징에 맞게 산업부는 산업육성, 미래부는 과학기술정책 식으로 해석되고 있는데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산업육성은 선진국이 것을 베껴오고 실행하면 됐는데, 4차 산업혁명은 기본적으로 그런 형태와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주로 해야 할 일은 새로운 환경에 맞는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진희기자 river@hankookilbo.com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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