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도착해 증거 날조, 사건 관련성 전면 부인
말 “인내심 한계” “억지주장 무거운 대가 치를 것”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사건의 용의자로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됐다가 추방된 북한 국적 리정철(47)이 “경찰 수사는 북한의 존엄을 훼손하는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리정철은 4일 새벽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에 도착해 말레이 당국에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한 뒤 북한대사관으로 이동했다. 리정철은 대사관 안에서 철망 너머로 취재진에게 “말레이 경찰은 날조한 증거로 (김정남) 살해를 자백하라고 강요했다”며 “공화국(북한)의 존엄을 훼손하려는 모략”이라고 말했다. 리정철은 김정남 암살과 관련해 유일하게 체포된 북한인 용의자이나 말레이 경찰은 확실한 물증 확보에 실패해 전날 그를 추방했다.
그는 13분 가량 이어진 인터뷰에서 말레이 측의 부당한 수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리정철은 자신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이라고 소개한 후 말레이에서 한 일을 묻는 질문에 “말이 끝나면 물어보라”고 말하는 등 비교적 침착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또 말레이 경찰이 휴대폰 통화 이력과 독약을 싼 종이, 가족 사진 등을 제시하며 허위자백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달 13일 사건 발생 당시 자신은 공항에 있지 않았다며 사건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다.
리정철은 “말레이시아에서 아무리 잘 산다 해도 내 조국만 못하다. 나를 이제까지 키워준 조국을 어떻게 잊겠느냐”며 북한을 두둔했다. “매일 밤낮, 하루하루가 10년처럼 힘들었다. 그러나 조국이 있기 때문에 견뎠다. 하루에도 열 번 스무 번 노래를 했다. 내 노래를 듣고 싶느냐”고도 했다. 리정철은 이날 베이징을 떠나 평양으로 향할 것으로 전해졌다.
말레이 정부는 북측의 잇단 억지 주장에 외교적 대응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날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 부총리는 전날 “북한 외교관들은 말레이를 그들이 협박해 왔던 다른 나라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며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또 강철 말레이 주재 북한 대사가 재차 말레이 당국을 비난할 경우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 대사는 북한 당국을 대신해 이번 사건을 “한국과 말레이 정부가 공모해 저지른 조작”이라고 주장하며 연일 말레이 측에 각을 세우고 있다. 말레이 정부는 강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규정해 추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말레이 측은 리정철의 재입국을 금지했다. 자히드 부총리는 김정남의 사망 원인이 심장질환이라는 북측 주장 역시 “경찰이 다양한 채널로 입수한 강력한 증거를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유족 없이도) 사망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DNA 샘플을 확보할 다른 방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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