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interregnum를 번역한 말이며 한자어로는 空位期라고 한다. 영어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어원적으로는 ‘inter(사이) +regnum(reign, rule의 명사형)’으로 이루어졌다. 원래는 봉건사회의 군주제 국가에서 군주 부재기를 가리켰고, 오늘날에는 어떤 사회에서 정부나 정치 권력의 공백기를 뜻한다.
조만 간에 헌재에서 박근혜의 탄핵을 결정하면, 한국 사회는 실질적 의미에서 공위기에 돌입한다. 칼 맑스는 “비판의 본질적 파토스는 분노이며 비판의 본질적 작업은 규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법적 탄핵이란 그러한 분노와 규탄의 법적 실체화라고 할 수 있다. 국민적 비판이 헌재의 탄핵 결정으로 구체화되면 우리는 위에서 말한 공위기에 돌입하는 것이다.
헌재가 박근혜의 탄핵을 기각하는 경우에는 매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 촛불 집회와 각종 여론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70% 이상에 해당하는 다수의 국민들은 “헌재 자체를 없애버리자”며 거리로 나올 것이고, 그 혼란과 분열은 연말의 대통령선거까지 계속될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가 ‘개판’이고 중국의 사드 보복이 문제인 상황에서 우리 국민 전체가 치러야 할 정치ㆍ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봄이 왔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봄은 제비와 함께가 아니라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함께 온다. 한반도의 봄은 늘 핵 전쟁의 위험과 함께 오는 것이다. 한미 양군은 이미 지난 1일 연합훈련인 독수리훈련에 돌입했고 이 훈련은 4월 말까지 계속된다. 지금 한반도에 미군의 가공할 핵무기들이 들어와서 설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은 이에 반발해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여러 발을 쐈고 이들은 1,000㎞ 이상 비행한 것으로 한국 합동참모본부에 의해서 파악됐다. 또, 조금 더 지나면, 중국으로부터 황사가 몰려올 것이다. 올해의 황사는 더 매섭고 귀찮을 것이다. 그 황사는 더 강화된 사드 보복과 더불어서 올 것이므로.
사드 배치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우선 그것이 한반도에서의 핵 전쟁 위험을 아주 높인다는 점과 또, 국민 사이에 찬반이 갈리는 매우 중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정치적 설득과 동의 없이 제멋대로 밀어붙이려고 했다는 점이다. 전 주미대사 리퍼트는 며칠 전에 "한국, 사드 빨리 배치해서 중국의 압박수단 안되게 해야"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양키 제국주의자’의 무책임한 얘기다. 리퍼트는 미국 민주당 정권에 의해 임명되었는데, 민주당을 포함한 미 제국주의 세력은 결정적인 순간에 늘 남한에서의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늘 짓밟으려 한다.
만약 박근혜가 탄핵된다면, 황교안은 사드 배치 문제를 포함해서 박근혜 정부가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이 졸속적, 일방적으로 추진했던 모든 중요한 사안을 다음 정권 때까지 보류해야 한다. 특히 사드 배치 문제는 밀실 속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밀어붙일 사안이 결코 아니다. 나는 대통령 선거와 함께 국민 투표를 할 것을 제안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사드 배치에 관한 국민 투표의 결과를 따르면 된다.
나는 헌재가 박근혜를 탄핵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만약 헌재가 박근혜의 손을 들어준다면, 일단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명하고 발전시켜 온 최선의 정치 과정이고 정치 제도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든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늘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뿐만이 아니라 실질적 민주주의, 즉 경제, 사회, 산업 분야 등에서의 민주주의도 확장, 심화시켜나가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심의 내지 숙의 민주주의 등으로 불러 온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장 및 심화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대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나는 그 핵심이 소수파 및 반대파의 권리와 주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보장을 위해서,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사상 표현 및 양심의 자유, 언론 및 출판의 자유 등이 있는 것이다. “삶이란 양쪽 끝이 타오르는 촛불처럼 살아야 한다”는 좌우명 아래 살았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자유란 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자기 표현의 자유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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